실직은 바람처럼 찾아든다…‘공포탈출 가이드 A to Z’

  • 입력 2009년 2월 25일 14시 06분


-주간동아 675호

‘12월O일 O시 본부장실로 오세요, 면담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초 중견기업에서 K 차장의 휴대전화에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K씨는 별다른 생각 없이 시간에 맞춰 본부장실을 찾았다.

“회사가 무척 어렵습니다. 1년 무급 휴직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위로금조로 3개월치 월급을 더 받고 그만두시겠습니까?”

K씨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본부장으로부터 그럴 수밖에 없는 회사의 사정을 들은 K씨는 결국 3개월치 월급을 더 받는 것으로 결정하고 사표를 썼다. K씨는 39세. 6살 딸과 4살 아들을 키우느라 매일 전쟁을 치르는 전업주부 아내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막막했다.

또 다른 중견기업에서 대리로 일하는 S씨는 지난 설 연휴 전날 황당한 일을 당했다. “전 직원은 강당으로 모이라”는 연락을 받은 직원들은 사장이 설을 앞두고 덕담이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사장은 전 직원에게 사표를 쓰라고 했다. 연휴 직후 사장은 직원들의 사직서를 선별 처리했다. S씨도 결국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통계청이 공식 집계한 1월 현재 실업자 수는 84만8000명. 그러나 실질 실업자수는 346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실질 실업률은 무려 15%로 20명 중 3명꼴로 실업자인 셈.

전 세계가 경제위기에 봉착한 요즘 실업은 비단 우리만 겪는 고통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실업자들이 다른 나라 실업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정신적 충격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희망퇴직이나 이직 등 ‘자발적 실업자’보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직장에서 쫓겨난 ‘비자발적 실업자’가 당하는 고통은 더욱 크다. 이유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사회안전망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8월 현재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67%에 이르고, 정규직 근로자들 중에도 18%가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실직을 당하면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신세가 되고 만다. 고용보험에 가입했다고 해도 실업부조 효과가 미미해 실직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맞벌이 가구는 ‘소득이 2배’라 실업 여파가 작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착시현상이라고 경고한다. 실업에 노출됐을 때 맞벌이 가정이 외벌이 가정보다 파산 위험이 높다는 것. 2004년 미국에서 출간된 ‘맞벌이의 함정(The Two Income Trap)’에 따르면 맞벌이가 외벌이보다 수입이 커 지출 부담을 상대적으로 덜 느낀다는 점이 ‘함정’으로 꼽혔다. 돈에 여유가 있는 것으로 여겨 주택 구입과 교육비 지출이 크다는 것. 고정 지출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다 보니 소득은 많지만 저축할 여력이 없고, 예상치 못한 지출에 대응하는 것이 외벌이 가정보다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직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재무설계다. 엠앤엘파트너스 최태선 대표이사는 “실직에 대비한 솔루션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재무설계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그는 긴급 생활자금을 금세 현금화할 수 있는 상품, 즉 CMA나 MMF 통장에 넣어두라고 조언한다. 긴급 생활자금이 없는 상태에서 불운의 실직을 당하면 ‘있는 재산’을 까먹는 도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직을 당한 후에는 심리적인 안정과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다음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외래정신진료센터 이수진 심리상담사의 조언이다.

“실직한 상황일수록 ‘정신을 차릴 수 있는’ 환경에 있어야 한다. 잘 자고, 제 시간에 기상해 운동하고, 밥도 잘 먹어야 한다. 몸을 챙기는 게 곧 마음을 챙기는 것이다. 직장에 다니느라 못한 일들을 하고, 좋은 습관을 들이는 기회로 실직상태를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놀 수는 없는 일.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 김인숙 심층작업상담사는 “신규 채용보다 경력 채용을 선호하는 게 최근의 흐름”이라며 “눈높이를 낮춰 취직한 뒤 다양한 경력개발프로그램을 이용해 자기 경력을 관리해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내외 고용보험 실태 비교,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실직 전후 ‘관리기술’, 재취업 성공 노하우 등 자세한 내용은 ‘주간동아’ 675호(3월3일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주간동아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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