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에만 기댄 ‘나홀로 엔진’… 美 ‘소비 버블’ 꺼지자 흔들

  • 입력 2009년 2월 3일 02시 58분


■ 한국경제 어디로

금융위기 극복돼도 선진국 예전같은 과소비 어려워

수출주도 경제 패러다임으로는 성장의 한계 맞을듯

산업구조 개편-내수 활성화 등 새 동력 찾기 나설때

한국 경제가 1970년대 이후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질 좋고 값싼’ 한국 상품을 사줄 소비국들이 든든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제품의 주요 소비시장인 선진국 경제의 호황은 한국이 10여 년 전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는 데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최근 10년간 세계 경제는 이른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 덕택에 호경기를 구가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적극적인 소비로 아시아 신흥국에 외화가 쌓이고, 이 돈이 다시 선진국에 투자되는 방식이다.

경제 석학들은 수년 전부터 이런 글로벌 자본주의의 불균형을 ‘공포의 균형’이라 부르며 더는 유지되기 어렵다고 경고해 왔다. 결국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이런 불균형이 깨지면서 선진국 국민들이 소비 여력을 상실하자 그 충격파는 수출에 의존해 경제 규모를 키워온 한국을 덮쳤다.

더욱 문제가 심각한 것은 금융위기가 극복되더라도 미국 등 세계의 과소비 국가들이 당분간 과거와 같은 소비 패턴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한국이 성장 방정식을 바꾸지 않는 한 금융위기 전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잠재성장률이 4%대에서 2, 3%대로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글로벌 불균형 시대 막 내리나

세계 무역의 불균형 상태는 2000년대 초반 절정에 달했다.

미국인들은 빚을 내 가면서 분에 넘치는 소비를 했고, 미국 시장을 공략한 아시아 국가들은 막대한 무역흑자로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 결과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1998년 2150억 달러에서 2006년에는 790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현수 수석연구원은 “2006년까지 세계 경기가 호조를 보인 것은 이 같은 불균형에 의존한 것”이라며 “부동산 버블 기간 미국의 소비가 매우 활발했고 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경기를 이끈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불안정한 균형’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를 계기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본격적으로 터진 금융위기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의 소비 패턴을 한순간에 바꿔버렸다.

한마디로 씀씀이를 줄이고, 그 돈으로 저축을 더 하는 것. 지난해 4분기(10∼12월) 미국의 저축률은 2.9%로 치솟았는데 이는 1년 전 1%도 채 안 됐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상승 폭이다. 수입이 줄면서 미국의 적자폭도 2007년에는 전년 대비 감소세로 바뀌었다.

이 같은 흐름을 예상치 못한 아시아 국가들은 호황 국면에서 막대한 설비투자로 생산 능력을 키웠다가 사상 초유의 공급 과잉 사태에 직면했다. 일본은 도요타자동차 소니 등 수출기업들이 줄줄이 적자를 냈고 중국의 수출 증가율도 지난해 11월 이후 석 달 연속 감소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은 지난 수십 년간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수요를 진작하라는 충고를 받았지만 이를 실천하지 않았다. 일본의 ‘수출 버블’이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연구보고서에서 “글로벌 불균형이 무너지면 최악의 경우 세계 경제는 달러 폭락, 미국 경기 침체, 미국 장기금리 급등, 아시아 경제의 몰락이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수출의존 경제 ‘고용 없는 성장’ 초래

지금과 같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글로벌 경제위기 국면에서는 내수시장이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내수기반 없이 수출로 커 온 한국 경제는 미국 등 선진국의 소비가 줄어들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의 경기침체는 호황기에 대외무역의 외형을 키우는 데 급급했을 뿐 산업구조 재편에 소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20일 방한한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아시아지역 회장인 스티븐 로치 씨도 “지난 호황의 최대 수혜국이었던 한국이 그동안 역동적인 내수시장 육성에 박차를 가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금융위기가 한창이었을 때 유독 한국의 외환·주식시장이 큰 충격을 받은 것도 이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의 취약성 탓이었다.

한국의 과도한 수출의존도는 ‘고용 없는 성장’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수출액 10억 원당 취업자 유발 효과는 1995년 26.2명에서 2000년 16.6명, 이어 2003년에는 12.7명으로 낮아졌다. 과거 노동집약 산업에 집중됐던 수출이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고용 창출 효과가 눈에 띄게 낮아졌기 때문. 내수경제의 활력 없이 수출만 늘려서는 일자리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산업연구원 주력산업실 송병준 선임연구원은 “산업구조에서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외풍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며 “각종 서비스업을 육성해 지나치게 수출 의존적인 산업구조를 점차 바꿔 나가지 않으면 경제성장의 엔진이 현저하게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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