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 한푼이 아쉬우니…” 결혼예물들 장롱밖으로

  • 입력 2009년 1월 13일 18시 42분


"제 값만 받을 수 있다면 팔아 생활비에 보태 써야죠."

13일 서울 성북구 성북2동 보석업체 딕스다이아몬드 매장에서는 다이아몬드 반지 등 결혼 예물을 다시 되팔려는 이들을 대상으로 공개 무료 감정 행사가 열렸다.

이날 매장에는 국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손꼽는 감정 전문가들이 공짜로 감정을 해준다는 소식에 장롱 서랍 안에 고이 모셔뒀던 결혼 예물을 챙겨 갖고 나온 소비자들로 북적거렸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온 한 30대 주부는 이날 시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1.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를 갖고 왔다. 그는 "의미가 깊은 반지이지만 액세서리를 즐겨하지 않아 집에 모셔두기만 한다"며 "남편의 사업이 여의치 않아 팔아서 생활비에 보탤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롱 밖으로 나온 결혼 예물

경기 불황 여파로 고가(高價)의 결혼 예물을 되팔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날 무료 감정 행사에 7캐럿 크기의 캣츠아이(녹색 빛이 도는 유색 보석)에 대한 보석 감정을 의뢰한 50대 중년 여성은 "한정식집을 창업하려는데 돈이 부족해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보석을 갖고 왔다"고 털어놨다.

딕스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중고 보석 매매를 문의하는 소비자가 갑절 가량 늘었다. 이 업체는 당분간 중고 보석을 팔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아예 전문가 감정을 받아 경매로 보석을 매매하는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가격이 비싼 다이아몬드 외에도 돌 반지나 골드바 등 순금 제품을 현금화하려는 소비자도 늘었다.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에서 P 보석상을 운영하는 임 모 사장은 "요즘 종로 보석상 일대에는 금을 사러 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더 많다"며 "순금은 2, 3년 전보다 가격이 2배나 올라 이 기회에 현금화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경제평론가로 활동 중인 엄길청 경기대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경기 불황이 깊어지면서 보석과 같은 유휴 자산을 유동화 하려는 소비자가 느는 것"으로 풀이했다.

●반지만 주고받는 알뜰 결혼 준비족(族) 늘어

경제 한파(寒波)에 결혼예물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다이아몬드 외에도 진주 등으로 반지, 귀걸이, 목걸이 세트를 3, 4개 씩 구색을 갖췄다면 요즘은 커플링만 주고받는 예비 신혼부부가 많아졌다.

서울 종로 3가 G 보석상 직원인 김 모 씨는 "다이아몬드 크기도 과거 5부나 7부에서 3부로 작아졌고, 예물 시계도 생략하는 추세"라며 "노리개나 은수저 같은 예물은 문의하는 사람조차 없다"고 전했다.

이 지역 한 보석상에 만난 예비신부 박 모 씨는 "남자친구가 주식으로 손실을 많이 입은 터라 결혼 자금이 넉넉지 않아 3부 다이아몬드 반지만 주고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하선영(20·연세대 사회학과 2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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