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9>노사양보로 고용불안 이기자

  • 입력 2009년 1월 10일 03시 04분


“투쟁땐 공멸, 양보땐 공생”… 노사 ‘신뢰의 손’ 잡고 뛰어라

지난해 노사화합선언 전년의 3.5배로 늘어

“노동문제, 정치적 이슈와 결부시켜선 안돼”

자동차부품업체인 A사는 2007년 11월 노조의 총파업 여파로 경영난에 시달리다 법정관리를 거쳐 지난해 7월 결국 파산선고를 받았다.

갈등은 회사 측이 경영악화로 최근 3년간 임금을 동결하고 연봉제를 도입한 데서 시작됐다. 노사 간의 견해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노조는 결국 2007년 11월 전면 파업을 시작했고, 회사는 직장 폐쇄로 대응하는 등 갈등을 빚다 파국을 맞았다.

제강·압연 업체인 부산의 B사도 외환위기 당시 경영악화로 임금 동결, 구조조정은 물론 법정관리까지 받았던 회사. 노사갈등도 끊임없이 있었지만 새롭게 회사를 인수한 새 오너가 지난해 노조대표 출신을 사장으로 임명하면서 갈등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이 회사 노사는 지난해 전 직원이 참여하는 경영설명회, 노사화합 한마음 전진대회 등을 잇달아 열고 상생의 길을 다져나갔다. 그 결과 지난해 57세이던 정년을 2년 더 연장해 20여 명이 혜택을 봤으며, 올해부터 매년 60명씩 해외연수도 보내기로 했다.

올해 노사관계는 세계적 경제위기로 인한 고용불안 요인이 높아짐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 험난한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정규직법 개정,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 전임자 급여 문제, 해고요건 완화 등 굵직굵직한 노동계 현안들도 곳곳에 암초처럼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올 한 해 노사관계가 어둡지만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상생의 길을 찾으면 선진 노사문화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노동계 현안 산적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까지 임금교섭이 타결된 100인 이상 사업장 5667곳 중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한 곳은 774곳(13.7%).

이 중 절반이 넘는 395곳이 11, 12월에 임금 동결 및 삭감을 결정했다.

이는 금융위기가 실물분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뜻으로 경제 불황이 본격화할 경우 임금 동결 또는 삭감은 물론 인원 감축을 하는 회사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기침체로 고용이 불안해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는 굵직한 노동계 현안도 산적해 있다.

7월 2년간의 사용기간이 처음으로 만료되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비정규직의 사용기간 연장 여부를 놓고 상반기 노동계와 정부 및 정치권의 한판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2년인 사용기간을 4년 이상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방침이지만 노동계는 “근본적인 대책이 못 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급여 문제도 노동계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정부는 1997년 노동법 개정안에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에 대한 회사 측의 급여지원 금지를 명문화했으나 반발이 심해 2010년 1월 1일까지 시행이 미뤄진 상태다.

복수노조 인정에 대해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원론적으로는 찬성하고 있지만 복수노조 설립 시 회사와의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정부안에는 결사반대다.

또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원 금지는 중소기업 노조를 고사시킬 수 있어 자율화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 시각이다.

이 밖에 파견 근로허용업종 확대, 최저임금제 개정, 공기업 구조조정 등도 올 한 해 노동계를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인다.

○ 증가하는 노사화합 및 양보 교섭

최악의 노사갈등이 예견되고 있지만 사업장별로 노사화합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늘고 있어 올해 노사관계가 반드시 어둡지만은 않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9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무파업, 임금동결, 임금교섭 위임 등 노사화합을 선언한 사업장은 2678곳으로 2007년 749건에 비해 약 3.5배로 증가했다.

디스플레이 제조업체인 SKC Haas는 지난해 11월 노조 측이 먼저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임단협 무교섭 위임 타결을 제안하고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인 ㈜진합도 지난해 12월 기존의 주야 2교대제를 주간 1교대제로 전환하고 노사가 해고보다 휴업 휴직 훈련 등을 통해 고용 안정에 노력하기로 했다.

○ 선진 노사문화 정착의 계기로 만들어야

일각에선 노동계가 위기에 몰린 올해가 선진 노사문화를 정착시키는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라는 목소리도 있다.

명지대 경영학과 이종훈 교수는 “상당수의 중소 사업장에서는 서로 양보하는 노사문화가 소리 없이 정착되고 있다”며 “기업도 외환위기 때 경험이 있어 이번 경제위기를 기회로 ‘사람을 자르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9∼11대 서울지하철공사 노조위원장을 지낸 배일도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노동 문제가 방송법 등 정치적 이슈와 결부될 경우 파장이 엄청나게 확산되고 결국 위기 극복의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노사정 모두 갈등 요소를 하나라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