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웃은 원화… 실물경제가 변수

  • 입력 2008년 10월 15일 02시 57분


환율 나흘째 떨어져 1100원대 문턱에

전문가 “돌발상황 없는 한 하락세 전망”

《14일 오후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의 얼굴에 오랜 만에 화색이 돌았다. 이달 2일부터 환율이 나흘 새 208원이 오르는 비상 상황에 대처하며 파김치가 된 그에게 이날 환율이 30원 떨어져 나흘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 최 국장은 “해외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돌발 상황이 없는 한 환율은 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라며 “시장이 잠잠해지면 고생한 직원들과 중국 음식점에서 회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 국장이 직원들과 맘 놓고 회식할 수 있는 날은 언제가 될까. 외환 전문가들은 두 가지 조건이 함께 갖춰져야 할 것으로 본다. 우선 세계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풀리고, 4분기(10∼12월) 경상수지 흑자 전환이 확인되는 시점이라야 ‘회식일’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서울 외환시장을 짓눌렀던 미국발 금융위기의 과도한 충격과 공포는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세계 금융위기의 여진과 돌발 악재에 환율이 출렁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환율은 나흘째 하락세를 이어가며 지난달 말(1207원)에 근접한 1208원으로 내렸다. 이달 초 상승분을 반납한 것이다. 이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지난달 16일 이후 최장기 하락이다.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과도한 불안 심리를 떨치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고 보고 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등 가시적인 조치가 나오면서 외화자금 시장 안정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고, 환율 하락을 예상하는 수출업체의 매물이 나오고 있다.

최 국장은 환율 하락의 원인으로 △선진국 증시가 호전됐고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으며 △자산운용사의 선물환 매입이 줄었고 △기업들이 보유한 외환을 외환시장에 내놓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균형 환율(1002원), 삼성그룹의 내년도 경영계획의 기준 환율(1040원)은 지금보다 160∼200원 낮다. 반면 SK경제경영연구소는 경상수지 균형을 이루는 환율을 현 수준인 1200원으로 추정했다. 현재 환율은 ‘리먼 사태’ 직전인 지난달 12일(1109.1원)보다 98.9원 높다.

최 국장은 “10월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 환율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맞게 안정될 것”이라며 “민간 연구소들이 전망한 환율 수준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은 국제 유가 하락으로 4분기 60억 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내고 대기업의 달러 매도 가능 금액이 240억 달러 정도 된다는 점을 근거로 환율 하락을 점치고 있다.

박형중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1980년 이후 한국은 외환위기, 신용카드 사태, 현재의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 차례 환율 급등 시기를 겪었다”며 “환율이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환율이 빠르게 하락한 선례를 볼 때 최근 환율이 연말에 1100원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아직 변수는 남아 있다. 연 0.5%의 저금리로 돈을 빌려 고수익 외화자산에 투자하며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줄 역할을 한 일본의 ‘엔 캐리 자금’이 돌아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본격 회복 시점은 아닌 데다 내년 실물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몇 분기 동안 4%대 미만의 성장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석태 한국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1200원 선에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본다”며 “실물 경제에 대한 우려감이 있어 1150원 부근에서 하락을 멈출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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