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 거래도 당당히 카드로…소액영수증 결제 확대

  • 입력 2008년 8월 12일 03시 01분


《“2500원입니다. 현금영수증 드릴까요? 휴대전화 번호 불러주시겠어요?”

“아, 현금 말고 카드로 할게요.”

최근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사려던 회사원 박모(29) 씨는 1만 원짜리 지폐 대신 신용카드를 꺼내들었다. 5000원 미만까지 현금영수증을 받을 수 있게 된 7월 이후 이렇게 적은 액수를 낼 때 신용카드를 쓰는 일이 부쩍 늘었다.

박 씨는 “예전에는 1만 원 미만의 물건을 사고 신용카드를 내밀기 민망해 현금으로 내곤 했다”면서 “하지만 현금영수증 제도가 신용카드를 긁는 것과 결과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아예 카드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

소비자들의 소액 결제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현금영수증 발급이 늘었을 뿐 아니라 박 씨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신용카드 소액 결제도 늘어나는 추세다.

○ 5000원 미만도 ‘영수증’ 발급

국세청이 7월부터 5000원 미만 액수도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한 효과는 분명히 나타났다. 소액 결제가 많은 편의점 GS25의 7월 현금영수증 발급 건수는 6월보다 57% 늘었다. 훼미리마트는 현금영수증 발급 건수가 전월 대비 239% 증가했다.

현금영수증 발급이 급증했지만 신용카드 이용은 줄지 않거나 오히려 늘었다.

GS25는 7월 5000원 미만 소액 결제 건수 가운데 신용카드 결제 비중이 전월 대비 4.9%포인트 증가한 54.4%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GS25 관계자는 “현금영수증을 발급받는 대신 소액이라도 신용카드를 시용하는 고객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훼미리마트는 7월 현금영수증 발급 건수가 3배 이상으로 증가했지만 5000원 미만 소액 결제 건수 중 카드 결제비중은 42.5%로 전월 대비 0.7%포인트 줄어 변동이 거의 없었다.

○ “티끌 모아 소득공제” 인식 확산

2005년 현금영수증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 카드업계는 신용카드 결제가 줄 것을 염려해 이 제도를 반기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국내 최대 카드사인 비씨카드에 따르면 전체 카드 결제 건수 중 1만 원 미만 결제 비중은 2004년 8.6%에서 2005년 13.9%, 2006년 17.1%, 2007년 19.4%로 증가 추세를 보인다. 현금영수증 제도 시행 이후에 1만 원 미만 소액 결제에서 신용카드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

세정당국은 현금영수증 제도가 정착되는데도 소액 카드결제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처음에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효과에 만족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소액이라도 누적되면 많은 소득공제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면서 “정부로서는 현금영수증이건, 신용카드건 자영업자의 소득원이 더 많이 파악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근로소득자는 총급여액의 20% 넘게 신용카드를 쓰거나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으면 초과분의 20%만큼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양쪽 다 소득공제가 된다면 포인트 적립 등 혜택이 많은 신용카드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것도 소액 카드결제 증가의 원인 중 하나다.

○ 소비자-국세청은 웃고 가맹점은 울고

소액 결제에서 현금영수증 발급, 신용카드 사용이 동시에 늘면서 자영업자들의 세원이 더 많이 노출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금영수증 발급 이후 최근 몇 년간 자영업자들의 사업소득세가 예상보다 많이 걷히고 있다”고 말했다.

카드업계로서는 카드 이용의 확산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결제 및 승인 비용 증가’라는 새로운 고민을 안게 됐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소액 거래는 가맹점에서 받는 수수료보다 카드 거래를 중개해 주는 밴(VAN)사에 주는 업무대행 수수료 등의 고정비용이 더 든다”고 설명했다.

영세 카드가맹점들은 울상이다. 현금영수증 발급이 늘어 ‘무자료 거래’로 탈세할 수 있는 부분이 줄었고, 카드 결제가 동시에 늘면서 가맹점 수수료 부담도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세수가 드러나는 게 싫어 적극적으로 현금영수증을 내주진 않는데 1만 원이 안 되는 물건을 사고도 현금영수증을 요구하는 고객이 늘어나 걱정”이라고 말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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