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개인도… ‘환율폭탄’에 화들짝

  • 입력 2008년 5월 10일 02시 58분


기업 원자재값 올라 ‘악’… 가계도 유학비용 늘어 ‘억’

불붙은 기름값… 정유사들 달러수요 급증 ‘악순환’

우리은행이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의 유학이주센터에는 9일 아침부터 송금이나 환전 관련 문의를 하는 고객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최근 달러당 1000원 선을 넘어 가파르게 오른 원-달러 환율 때문이었다.

문의 전화 중에는 “외화예금에 넣어둔 달러를 서둘러 팔아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며칠간 환율이 너무 지나치게 오른 것 같아 떨어지기 전에 환차익을 챙겨 두겠다는 것이었다.

이 센터의 정선미 과장은 “이미 계약한 해외부동산의 결제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달러 값이 매일 오른다며 한숨짓는 고객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유가, 곡물가격 상승과 맞물려 환율 급등은 향후 정부의 물가 관리에도 상당한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 기업들 연초 경영계획 줄줄이 차질

CJ제일제당은 올해 경영계획을 수립하면서 연평균 원-달러 환율을 935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요즘 환율이 이보다 100원 이상 오르면서 손실이 커지고 있다. 이 회사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대두, 옥수수 등 원재료 수입비용이 연간 30억 원 정도씩 늘어난다.

이 회사뿐 아니라 연초에 환율 전망을 900원대 초반으로 잡았던 많은 국내 기업은 예기치 못한 외생변수로 타격을 받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해외에서 중간재를 수입해야 하는 항공, 정유, 식품 업종 등의 타격이 크다.

아시아나항공도 환율이 10원 상승할 때마다 외화로 지출하는 항공유, 항공기 리스비용 등에서 연간 14억 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환 헤지(위험 회피)를 하느라 금융권의 일부 옵션파생상품에 가입했던 중소기업들도 예기치 못한 환율 급등으로 막대한 환차손을 보고 있다.

○ 조만간 1080원까지 오를 수도

최근의 환율 급등은 유가 상승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국제유가가 매일 최고치를 갈아 치우면서 국내 정유사들이 전과 같은 양의 원유를 국제시장에서 사는 데 더 많은 달러가 필요해진 것이다.

지금처럼 원-달러 환율이 상승 기조를 보이면 달러로 대금을 받은 수출업체들은 이익을 늘리기 위해 달러를 시장에 내다파는 시점을 늦추고, 수입업체들은 대금지급에 필요한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더 비싼 가격으로 달러를 사들이기 때문에 환율은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이 커진다.

또 유가 및 곡물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원화 가치마저 하락하면서 향후 국내 소비자물가에도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이 향후 환율을 보는 시각은 다소 엇갈린다.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홍승모 차장은 “현재는 환율이 계단식으로 상승하고 있어 일부 조정이 오더라도 큰 폭의 조정은 어렵다”며 “1050원 선이 뚫린다면 조만간 1080원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금융연구원 송재은 연구위원은 “현재 환율은 단기적으로 과도하게 오른 만큼 하반기(7∼12월)부터는 완만하게 환율이 내려가 연말엔 달러당 970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의 파라그 라마이야 글로벌 외환전략 부사장은 이날 원-달러 환율이 연말에 930원대, 내년 말에 915원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9일 원-달러 환율은 한때 1050원 선을 넘어섰지만 오후 들어 달러 매물이 늘어나면서 전날보다 4.90원 떨어진 1044.7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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