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상여금 폐지되자 수당올려…김선달도 울고 갈 ‘여의도 證선달’

  • 입력 2008년 5월 3일 03시 19분


《2006년 12월 26일 증권예탁결제원 9층 회의실. 이사회에 참석한 사외이사 한 명이 “직원 임금을 2% 올리면서 매달 지급하는 업무수당도 5만 원씩 인상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담당 부장이 답했다. “과거에는 임금협상을 할 때 정부 가이드라인을 어길 수 없어 (임금은 많이 못 올려주는 대신) 특별상여금을 줬다. 원만한 협상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작년부터 정산법(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 적용을 받으면서 이 제도가 폐지됐다. 그래서 업무수당을 5만 원 올리기로 임단협에서 결정했다.” 정부가 정한 한도 이상으로 임금을 편법 인상하는 수단이 ‘특별상여금’에서 ‘업무수당’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예탁원 이사회 회의록에 비친 ‘방만 경영’

2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증권예탁결제원 이사회 회의록에는 이처럼 방만한 경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허다했다. 경쟁 없는 기관의 특징이다. 결제원은 지난해 직원 1인당 평균보수가 9677만 원으로 공기업 및 공공기관 중 1위를 차지한 곳이다.

2007년 이사회에서 ‘중장기 사업목표에 따른 소요예산이 너무 크다’는 지적에 대해 한 임원은 “이미 시장의 거래량 자체가 예탁결제원을 먹여 살리는 데 충분할 정도로 업(up)되어 버렸다”고 태연히 답변했다.

이사회가 임금보수 안건을 처리할 때 노동생산성보다 ‘외부 시선’을 주로 의식한다는 점도 드러났다. K 감사는 “우리 인건비가 19%씩 올라가도 사회적인 비아냥을 안 받겠느냐” “사외이사님들이 사장님 급여가 적다거나 그렇게 말씀 좀 해 달라”는 묘한 발언을 한 것.

몇몇 사외이사가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묵살된 흔적도 여럿 있었다. 한 사외이사는 “실무자에게 지적을 해도 고쳐지지 않아 정식 회의(이사회)에서 다시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사외이사들은 사내근로복지기금 문제를 자주 지적했다. 공공기관의 사내근로복지기금은 회사가 순이익에서 출연하며, 기관의 자체 예산보다 정부의 통제를 덜 받기 때문에 급여를 편법 인상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곤 한다.

2006년 12월 이사회에서 L 사외이사가 이 문제를 지적하며 “기금 출연한도를 180억 원 정도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정의동 사장은 “아직은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며 넘어갔다.

지난해 11월 이사회에서는 정해진 복지지원금 안에서 직원이 용도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적 복지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사내근로복지기금을 30억 원 출연하겠다는 회사 안이 올라왔다. H 사외이사가 “선택적 복지제도의 취지는 (복지 효율화이지) 확대가 아니다”라며 반대했지만 다음 달 이사회에서 25억 원을 출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사내근로복지기금 중에는 항목도 정해놓지 않고 문화체육활동지원금, 기념금의 형태로 지급되는 돈도 있었다. “그런 돈은 회사 예산으로 지급하는 게 옳다”는 H 사외이사의 지적에 O 상무는 “그러면 인건비에 포함되는데, 이 경우 정부 예산운용지침의 적용을 받아 인상이 굉장히 어려워진다”고 답했다.

지난해 말 당시 기획예산처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13차 이사회에서 한 이사는 “기획예산처 사무관이 올해 복지제도 관련 출연금이 과다하다며 자료를 보내왔다. 공기업의 1인당 복지관련기금 적립금이 다른 기관은 900만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인데 예탁결제원은 3100만 원 정도라고 한다”고 전했다.

최근 예탁결제원을 포함한 31개 공공기관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 감사원은 “아직 감사 결과는 확정하지 않았지만 예탁결제원의 사내근로복지기금은 문제투성이였다”며 “조성에서 집행까지 방만한 데가 많아 여러 가지를 지적했다”고 밝혔다.

한편 예탁결제원은 사내근로복지기금 총규모와 사업용도 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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