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을 팔다보니…

  • 입력 2008년 4월 1일 02시 53분


호텔리어는 호텔에만?… 전자 금융 식품업 등 변화 전도사로 ‘이유있는 변신’

《급식사업을 하는 삼성에버랜드의 김건중 FC팀장은 호텔리어 출신이다. 김 팀장이 담당하는 곳은 전국 361개 기업의 사원식당이다. 값싼 음식을 빨리 먹어야 하는 사원식당과 고급 음식을 여유롭게 즐기는 호텔 레스토랑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김 팀장은 “천만의 말씀”이라며 “호텔에서 쌓은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푸드 컬처’라는 개념을 도입해 사원식당을 식사시간 이외의 시간에도 거래처 직원들과 차를 마시는 카페 등 창의적인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

○ 사원식당을 외부 손님과 차 마시는 공간으로

세계 유수의 호텔을 거쳤거나 스위스 등지의 호텔학교를 졸업한 고급 호텔리어들이 금융회사, 국제기구, 외식업체 등 산업 전반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고객의 입맛에 맞게 부가가치를 높인 사업에 관심이 쏠리면서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친절산업’ 종사자들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1993년 노보텔앰배서더에 입사해 1995년 에버랜드로 옮겼다. 당시만 해도 사원식당은 군대의 ‘짬밥’과 다름없는 음식을 제공하던 곳에 그쳤지만 호텔에서 식음료 서빙, VIP 의전, 호텔 경영 등의 경험을 쌓은 그의 생각은 달랐다. 사원식당은 ‘사원들의 사랑방’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철학은 최근 고객사인 대우건설 사원식당에서 사내 행사가 열렸을 때에도 요긴하게 활용됐다. 대우건설 임직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그는 쇠고기 스테이크와 칵테일 등 ‘호텔급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호텔리어 출신들은 금융권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현대카드는 최근 여행·쇼핑 특화 서비스 브랜드인 프리비아(PRIVIA) 등 VIP 마케팅에 스위스 호텔학교 출신들을 잇달아 영입하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연체율이 낮은 부자 고객들은 카드사가 타깃 마케팅 대상”이라며 “호텔리어들은 부자 고객들의 구매 패턴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VIP 마케팅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 “부자들 구매패턴 파악… VIP 마케팅에 적임”

유미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팀 과장은 올해 6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조르조 아르마니 TV 출시에 앞서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다.

홍콩 만다린오리엔탈호텔과 중국 상하이(上海) 인터콘티넨털호텔 등에 몸담았던 그는 2002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삼성전자에서의 유 과장의 업무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는 일이다. 삼성전자 자체 조사 결과 해외에서 브랜드 인지도는 괜찮은 편이지만 고급스럽다는 이미지가 약하다는 판단에 따라 명품 브랜드와의 제휴가 필요한 데 따른 것이다.

그는 “호텔처럼 고객을 직접 접하는 업무는 아니지만 고객 만족이 최상의 목표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지금의 업무도 호텔리어로서의 경험과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유엔 세계관광기구(WTO) 산하 스텝재단에서 일하는 김신국 대리는 에티오피아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초청해 책과 시설을 기증하는 ‘작은 도서관’ 개소식 행사를 개최한 데 이어 올해 6월 제주에서 열리는 WTO 집행위원회 이사회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호텔에서 배운 의전과 컨벤션 개최 노하우가 유용했다고 전했다.

스위스에서 호텔학교 글리옹과 레로셰를 운영하는 로리엇재단의 샌퍼드 링크 부회장은 “친절산업의 핵심은 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며 “주로 여행·숙박업에 종사했던 호텔리어들이 최근 서비스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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