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파워]<상>가격 결정권은 내손에

  • 입력 2008년 3월 19일 02시 56분


다이어트 아닌 쥐어짜기 ‘PB의 혁명’

《원자재 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대형 마트에선 일부 상품 가격을 내렸다. 가격 결정권이 제조회사에서 유통업체로 넘어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처럼 유통업계의 파워가 세지면서 소비자가 혜택을 보기도 하지만 일부 제조업체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백화점, 대형 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의 ‘권력’ 강화와 그 명암을 3회에 걸쳐 시리즈로 짚어 본다.》

대형 마트 1위인 이마트는 올해 초 1년 동안 가격변동이 없는 ‘365 제품’을 내놓고 물가안정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어 홈플러스가 PB(Private Brand·자체 브랜드) 5300여 개의 가격을 내렸다. 롯데마트도 MPB(우수중소생산자 브랜드)를 개발해 판매가격을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국제유가와 곡물가격이 급등하는데도 대형 마트들은 오히려 PB상품을 중심으로 판매가격을 내리고 있다. 제품 값 결정권을 제조회사가 아닌 유통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형 마트가 쥐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PB상품 가격은 일반 브랜드(NB·National Brand)와 비교하면 20∼40% 싸다. 이마트에서 팔리는 PB상품은 1만5000종류나 된다. 또 홈플러스엔 1만4000종, 롯데마트에는 6600종, 홈에버에는 440종의 PB상품이 있다.

대형 마트들은 PB상품이 싼 이유로 무엇보다 대량 구매로 매입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또 계획 생산으로 재고 부담이 적으며 대량 판매를 통해 이익을 남길 수 있어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형 마트가 상품가격을 이처럼 낮출 수 있는 것은 각종 비용을 제조업체에 떠넘기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대형 마트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가운데 61.5%가 판매장려금 등 추가 비용을 떠안았다고 대답했다.

한 중견기업 대표는 “대형 마트에서 발생하는 매출의 40∼50%가 판매장려금이나 판촉사원 고용비, 입점비, 반품비 등 갖가지 명목으로 지출된다”며 “대형 마트 납품은 결과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장사”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공장 가동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대형 마트와 거래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다른 판로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도 중소기업이나 후발 회사가 대형 마트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불공정거래를 경험한 중소기업의 86.8%가 거래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응답했다.

최근에는 백화점도 가격 결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제일모직, 코오롱, LG패션 등 주요 남성복 제조업체가 올봄 신상품 가격을 지난해에 비해 30%가량 낮춘 것이 그 예다. 롯데백화점은 “잦은 바겐세일을 없애는 대신 평소의 가격 거품을 빼자”는 ‘그린 프라이스’ 제도를 도입해 남성복 가격 혁명을 주도했다. 유통업체의 제안에 전체 남성복 가격이 내려간 셈이다.

롯데백화점 측은 “고객에게 가격 신뢰를 잃으면 남성복시장 전체가 어려워진다는 위기감이 제조업체가 그린 프라이스 제도에 동참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도 갈등은 있었다. 한 남성복 제조회사 관계자는 “1년 판매 계획을 다 짜놓은 상태에서 뒤늦게 제안이 들어와 마케팅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며 “자율 참여라고는 하지만 백화점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의 가격개입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숙명여대 경영학부 서용구 교수는 “대형 마트의 PB상품 경쟁이 가속화되면 공산품 가격이 올라도 생필품 가격은 떨어지는 ‘월마트 효과’가 국내에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그러나 제조업체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밖에서 이뤄지는 경쟁이라면 경쟁 자체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유통학회에 따르면 유럽 대형 마트 상위 25개사의 이익률 평균이 0.9% 정도인 반면 한국 유통업체의 이익률은 5%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주요 대형 마트에서 파는 제조업체 상품 가격과 PB상품 가격 비교
상품제조업체 상품 가격
(해당 대형 마트 판매 가격)
PB상품 가격
즉석밥CJ제일제당 ‘햇반’(210g) 1220원이마트 ‘왕후의 밥 걸인의 찬’(210g) 700원
생수농심 ‘제주 삼다수’(2L) 740원 이마트 ‘봉평샘물’(2L) 470원
콜라한국코카콜라 ‘코카콜라’(1.8L) 1620원이마트 ‘콜라’(1.5L) 790원
라면 농심 ‘신라면’ 600원 홈플러스 ‘좋은 상품 라면’ 410원
커피믹스동서식품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20개) 2650원 홈플러스 ‘알뜰상품 커피믹스’(20개) 1000원
고추장대상 ‘청정원 순창골 찹쌀고추장’(400g) 5540원홈플러스 ‘좋은 상품 예전 맛 고추장’(450g)4980원
식용유해표 식용유(500mL) 1720원롯데마트 ‘와이즐렉 식용유’(500mL) 1400원
세탁세제애경 ‘스파크’(4kg) 1만900원 롯데마트 ‘와이즐렉 절약세제’(4kg) 6300원
자료: 각 회사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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