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와 그래프’ 칼날에 혁신의 사과 난도질 당한다

  • 입력 2008년 1월 28일 06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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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비지니스리뷰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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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계의 이단아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사진) 하버드대 교수가 “재무 분석 도구들이 기업의 혁신 역량을 파괴하는 주범”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가 직격탄을 날린 재무 분석 도구들은 대다수 기업들이 자주 활용하고 있는 것이어서 향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최신호(1월호)에 실린 ‘혁신의 도살자들(Innovation Killers)’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미국 철강 시장에서 뉴코어(Nucor) 같은 신생업체가 원가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미니밀 설비를 도입해 성장하는 사이 US스틸 같은 기존 업체들은 재무 분석에 연연하다 신기술 도입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US스틸은 기존 설비가 당장 더 싼 값에 철강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재무적 계산 결과에 따라 이런 결정을 내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니밀 성능이 개선됨에 따라 뉴코어 등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말았다”고 강조했다.

주식시장에서 많은 주주가 ‘주당순이익(EPS)’을 높이라고 기업 경영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런 관행도 혁신을 방해하는 중대한 걸림돌로 꼽혔다. 증시에서 EPS를 높이라고 요구하는 주주들의 평균 주식 보유기간은 10개월에 불과하다는 게 크리스텐슨 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이런 주주들은 일반 고객들의 돈을 맡아 대신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나 연기금 운용자들이어서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는 관심이 전혀 없고 단기적 주가 차익만 노린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많은 기업이 △타당성 검토 △개발 △제품 출시 등 단계별로 혁신적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장치를 갖추고 있는데 많은 경영 전문가는 이런 관문들을 경멸한다고 전했다. 초기엔 성능이나 기술이 뒤처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박을 터뜨리는 혁신적 제품들이 이 관문을 넘지 못하고 폐기 처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이와 함께 특정 신규 투자 아이디어의 미래 수익 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각종 재무적 기법에도 치명적 결함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투자를 검토할 때 보통 투자하지 않은 상태의 수익을 ‘제로(0)’로 가정하지만 신기술에 투자하지 않았을 때에는 기업의 경쟁력이 취약해져 마이너스 수익을 낼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신기술 투자가 기대만큼 좋지 않은 성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하더라도 투자하지 않았을 경우보다 손실 폭을 줄일 수 있다면 과감하게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재무 분석 도구들이 복잡한 계산과 숫자를 동원해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있지만 주요 가정 사항들의 수치만 살짝 바꾸면 별 볼일 없는 사업을 얼마든지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경영대학들이 전략과 재무를 별개의 주제로 가르쳐 왔기 때문에 실무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략과 재무를 통합 강의하는 경영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재무와 전략의 편 가르기가 기업에서도 이어졌고 이로 인해 혁신적 아이디어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시장 진출(판매) 초기에 성능이나 가격 경쟁력이 취약한 열등 제품 및 서비스가 점차 발전하면서 기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란 개념을 최초로 정립하며 ‘경영학계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릴 만큼 유명해졌다.

크리스텐슨 교수의 최신 논문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한국 독점 파트너인 동아비즈니스리뷰 2호(1월 29일∼2월 11일)에 전문이 번역돼 소개된다.

김남국 기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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