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밀린 한미 FTA…내달 임시국회가 분수령

  • 입력 2008년 1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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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처리해 주세요”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21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김원웅 위원장(오른쪽)을 만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빨리 처리해 주세요”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21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김원웅 위원장(오른쪽)을 만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지난해 4월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양국 입법부의 비준동의 절차가 미뤄진 채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다. 자칫하면 한미 FTA가 사산아(死産兒)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국회는 대선과 정권교체, 4월로 예정된 총선 정국에 휘말려 정부가 지난해 9월 제출한 비준동의안을 아직 상임위원회에 상정도 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도 대선을 앞두고 의회 눈치를 보면서 비준안 제출을 머뭇거리는 상황이다.》

○“공든 탑 무너질라” 위기감 고조

한미 FTA가 발효되려면 한국이 이달 28일부터 한 달간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미국보다 먼저 비준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물론 4월 9일 치러질 총선 이후 새로 구성된 국회에서 통과될 수도 있지만 그때는 미국이 문제다. 미국은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8월부터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당대회가 잇달아 열리는 등 본격적인 선거체제에 돌입하므로 비준안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최소한 7월까지는 미 의회가 비준안을 통과시켜야 하고 처리기한(회기일 기준으로 90일)을 감안하면 미 행정부가 3월 중에는 비준안을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2월에 먼저 비준을 마쳐 미국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대선 전까지 비준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모두 한미 FTA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정부 내에서도 “이러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FTA 국내대책본부 윤영규 단장은 “그동안 대(對)국회 설명과 언론 홍보를 수십 차례 해 왔고 실무자들도 거의 매주 개별적으로 의원들을 설득해 겨우 비준안을 제출했다”며 “만약 비준안 통과가 안 된 채 새 국회가 출범한다면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비준안이 18대 국회로 넘어가면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며 “협정 자체가 통째로 무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지연·무산되면 한국 경제에 결정타

안충영 중앙대 석좌교수는 “한미 FTA 발효가 연기되거나 무산될 경우 한국 경제와 대외 신인도, 대미 관계 등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선진형 개방통상국가로 간다는 정부 정책의 기본 틀도 와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국책연구기관이 분석한 한미 FTA의 경제효과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비준이 1년 늦어질 때마다 한국 경제는 15조2000억 원씩의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비준이 지연될수록 미국시장의 관세 철폐로 인한 수출 증대 효과, 소비자 후생 등 막대한 경제적 효과의 실현 또한 지연된다는 뜻이다.

또 비준이 늦어지면 차기 정부는 국정의 틀을 짜야 할 집권 초기의 소중한 시간을 FTA 비준을 위해 국회와 정치적 협상을 벌이는 데 쓸 수밖에 없다.

협상을 진행 중인 다른 경제권과의 FTA 역시 추진력을 잃을 우려가 있다. 최낙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한국과 FTA를 맺으려는 나라들은 미국 진출의 교두보로서 한국을 선택하는 면도 있다”며 “협상만 해 놓고 정작 비준이 안 된다면 유럽연합(EU) 등 상대국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협상 의지를 의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제계는 최근 들어 한미 FTA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석래 회장과 한국무역협회 이희범 회장 등 FTA 민간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들은 14일 국회를 방문해 각 당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먼저 비준하면 미국 의회를 설득하기가 용이하다”며 이번 회기 내에 비준안을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최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에서도 양국 경제인들은 “한미 의회가 FTA를 올 상반기 내에 비준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 쇠고기 수입 문제, 시급히 해결해야

한미 FTA 비준의 또 다른 걸림돌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다.

한국은 현재 생후 30개월 미만의 소에서 생산된 살코기의 수입만 허용하고 있지만 미국은 ‘한국이 쇠고기 시장을 완전 개방해야 한미 FTA 비준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미국에서 쇠고기 시장은 한국의 시장 개방 의지를 보여 주는 상징으로 굳어졌다. 여기다 비준안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미 상원 재정위원회의 의장은 몬태나 주의 맥스 바우쿠스 상원의원이다. 몬태나 주는 미국 내 쇠고기 대량 생산 지역인 ‘비프 벨트(beef belt) 지역’. 몬태나 주 외에도 쇠고기는 미국 전역에서 생산되고 있어 쇠고기 시장을 닫은 상태에서 미 의회의 FTA 비준을 기대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대안 마련에 나섰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농림부는 최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동물성 사료 금지’라는 단서를 달면 30개월 미만이라는 월령(月齡) 제한을 풀 수 있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 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를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견해가 많다.

한미 양국이 쇠고기 시장 개방 문제에 대해 좀 더 유연한 태도를 갖고 고위급 간 대화를 재개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문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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