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솔루션]열심히 일하는 꼴찌 매장, 숨어있는 ‘킹핀’은?

  • 입력 2008년 1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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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솔루션’은 동아비즈니스리뷰(www.dongabiz.com)에 실린 경영 전문가, 학자, 컨설턴트, 재계 인사 등이 체득한 생생한 지식과 경험, 노하우를 동아일보 독자 여러분들께 축약해서 소개합니다. 최고 전문가의 통찰력과 지혜를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첫 회로 ‘전옥표의 현장 경영’을 싣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필자에게는 늘 어렵고 힘든 업무가 맡겨지곤 했다. A전자에서 근무할 때 이른바 ‘문제조직’을 맡아 간신히 살렸더니 다시 최하위 실적 지역의 유통 총괄 지사장으로 발령이 났다.

부임하자마자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직영점을 불시에 방문했다. 이유 없는 꼴찌는 없는 법이어서 당연히 직원들이 태만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빗나갔다. 다들 너무나 열심히 일했다. 특히 일선 판매직원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성과가 좋지 않을까. 관리자를 불러 직원들이 왜 저렇게 바쁘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듣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일선 판매사원의 경우 평가 관리항목이 무려 48가지나 됐다. 관리할 항목이 너무 많다 보니 집중도 잘 안되고 또 어디서부터 일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즉흥적으로 이 일, 저 일을 마구잡이로 시켜 밑으로 갈수록 일의 과부하 현상이 심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반드시 어딘가 흐름에서 막혀 있는 부문이 있을 텐데…’란 생각으로 고민에 빠졌다. 며칠이 흘렀다. 데이터를 살펴보니 특이한 현상이 눈에 띄었다. 고가 제품, 즉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등의 판매 비중은 전국 평균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반면 밥솥 등 생활가전 제품의 판매 비중이 턱없이 낮았다.

“바로 이것이다. 밥솥, 밥솥이다!” 나는 무릎을 치며 환호를 질렀다. 그리고 즉시 참모들을 불러 “지금부터는 각 매장에 밥솥을 30개 이상씩 진열하고 꼭 밥을 지어 둬 고객들이 시식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또 밥이 눋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밥을 하고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있게 했다.

모두들 어리둥절해했다. 하지만 필자는 다른 평가항목들은 다 뒤로 미루고 현장에서 밥솥만을 줄기차게 챙겨 나갔다. 매장들에서는 원성이 많았다. 왜 이익이 많이 나는 TV나 냉장고를 제쳐 두고 엉뚱하게 밥솥만 챙기느냐는 것이었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 내려와서 ‘무식한’ 짓을 한다고 수군거리는 일도 많았다. 회의시간에 필자가 나타나면 암호처럼 “밥통 떴다”며 놀려 대기도 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신기하게도 매출이 전국 2위권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무심코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이 밥솥에 밥이 지어져 있는 것을 신기해하다가 한두 번 밥맛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밥솥을 샀다. 게다가 돌아가서는 이웃들에게 소문까지 냈다. 처음에는 밥솥만 구경하러 온 손님들이 TV나 냉장고 등도 구입했다. 이제 직원들은 고객을 불러 모으기 위해 전단을 돌릴 필요도 없어졌다. 고객이 늘고 매출이 늘자 직원들의 사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마침내 이 지역 모든 매장은 3, 4개월 후 최상위권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것이 바로 ‘킹핀(kingpin)’의 위력이다. 볼링에서 한 방에 스트라이크를 하려면 반드시 킹핀(5번 핀)을 쓰러뜨려야 한다. 조직의 리더라면 일을 지시하거나 문제 해결을 할 때 반드시 이 킹핀을 찾아내 공략해야 한다. 즉, 임무를 줄 때는 최소한 그것이 지금 시점에서 꼭 필요한 일인지, 적절한 업무인지, 문제의 핵심을 관통한 것인지를 신중히 고민한 후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현장에서 경영을 지도하면서 항상 강조하는 원칙 중 하나도 바로 “리더들이 가능한 한 많이 고민하고, 부하들과 조직에게는 최대한 적게 임무를 주라”는 것이다. 킹핀을 공략하고 부하 직원의 업무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b>▼전옥표 대표는▼

지난해 40만 부가 팔린 경영 베스트셀러 ‘이기는 습관’의 저자인 전옥표(사진) ㈜에스에이엠티유 대표는 삼성전자 국내 전략 마케팅팀장으로 일하면서 애니콜, 파브, 지펠, 하우젠 등의 마케팅 성공신화를 이뤄 낸 주역이다. 성균관대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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