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간 한국 중소기업 ‘야반도주’ 늘었다는데… 왜?

  • 입력 2008년 1월 17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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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청산절차 만만디… 법규 미비로 피로감”

2001년 중국 칭다오(靑島) 시에 진출한 전자부품 제조업체인 A사는 중국 내 기업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적자폭이 확대되자 2006년 말 사업 철수를 결정하고 청산 절차를 시작했다. 그러나 1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빠져나오지 못한 채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당초 5일 걸릴 것으로 예상한 ‘청산개시 초보심사 회답’은 현지 정부 담당자가 “바쁘다”, “철수 원인 분석 중이다”는 등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100일이나 걸려 끝났다.

‘최종 청산비준 신청’ 절차는 심사비준 기관에서 “해관 재정 외환 세무 등 관련 기관에서 사전 예비심사를 받아오라”고 요구하면서 당초 계획보다 65일이나 더 걸렸다. 이 과정에서 세무국은 최근 2개년도 장부검사를 해야 한다면서 40일이나 대기시킨 후 검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A사 관계자는 “청산 절차 단계마다 엄청난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뿐더러 청산비용도 점점 늘고 있다”며 “야반도주하는 업체들의 심정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가운데 현지 사업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철수를 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야반도주’란 말도 나온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해당 기업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경영현실상 철수를 원하는 한국 기업들이 원만히 청산을 할 수 있도록 중국은 물론 한국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산업계에서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6일 ‘중국 진출 기업 사업 철수를 통해 본 청산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내놓고 “가공무역 제한, 근로자 해고 요건 강화 등 경영 여건의 변화로 한계 상황에 내몰린 한국 중소기업들이 중국 사업을 접고 철수하려 해도 청산 절차가 복잡하고 처리기간이 지연돼 중국에서 발목이 잡혀 있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청산 관련 법률은 일관성이 없고 법규 간 내용이 상충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공무원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법규를 적용하고 있다.

일부 지방정부의 공무원들은 청산 업무가 익숙하지 않아 청산기간이 지연되고 있다.

특히 회사정리는 이사회 만장일치 사항인데 중국 측 파트너가 투자원금과 기회비용을 요구하면서 청산에 비협조적인 경우가 많아 외국 기업의 사업 철수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력 구조조정과 임대차계약의 중도해지를 어렵게 한 법규 역시 중국 내 외국기업의 청산에 애로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이 같은 문제점을 중국 측에 제기해 시정을 요구하는 한편 그동안 중국 진출 지원에 초점을 맞췄던 기업지원 정책의 범위를 현지 경영과 사업 철수로까지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산업자원부 전윤종 중국팀장은 “최근 중국 내 한국 기업들의 무단 철수 사례가 늘고 있고, 이런 문제가 한중 간 통상마찰이나 국가 이미지 훼손 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보고 지난해부터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전반적인 애로 사항 등을 취합해 중국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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