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보다 일”… CEO들의 기업인생 이모작

  • 입력 2007년 12월 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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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호 씨가 올해 9월 한국코닥의 최고경영자(CEO)직을 갑자기 그만두고 중견 기업인 레인콤의 부사장급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옮겼을 때 주변에선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인들에게서 “낮은 자리로 옮긴 이유가 무엇이냐”는 전화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김 부사장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CEO가 직장인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지만 아직 나이(49세)도 젊고 자리에 연연하기보다는 경력 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고 말했다.

○‘경영인 경력 관리도 이모작’

김 부사장처럼 CEO를 지낸 이후에도 최고기술책임자(CTO), COO 등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경영인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도전은 신규 진출입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정보기술(IT), 인터넷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박석봉 전 엠파스 CEO는 회사가 SK커뮤케이션즈에 인수합병(M&A)되면서 SK커뮤니케이션즈의 CTO(부사장)로 새 출발을 했다.

라이코스코리아의 CEO였다가 회사가 SK그룹에 인수되면서 SK텔레콤 상무로 옮긴 가종현 씨는 해외 통신사업 개발이라는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

아서디리틀 한국지사장 출신인 정태수 KT 서비스개발본부장(전무급 전문임원)도 컨설팅 업계를 떠나 KT에서 새 영역인 통신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생각은 ‘자리보다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야후코리아 CEO였다가 올해 4월 두산 출판BG의 COO로 옮긴 뒤 출판BG장이 된 성낙양 부사장은 “역할이 제한적인 다국적 기업의 한국지사장보다 대기업의 부사장 역할이 훨씬 더 크다”며 “자리를 낮춘 게 아니라 역할을 확대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이사회 의장이 내년 5월 회사로 복귀할 때 CEO 대신 최고학습책임자(CLO)를 맡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다양한 경력 관리 차원

이 같은 현상에 대해 CEO가 전권을 가졌던 과거와 달리 COO, CTO 등 이른바 ‘C 레벨’의 공동 경영체제가 확산되면서 경영인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진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CEO를 거친 사람이 자신의 경력 관리를 위해 COO 등을 충분히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경영자의 인력시장인 ‘CEO 시장’이 ‘C 레벨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병권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자리를 낮추는 것은 해외 기업에선 일상화된 일이지만 ‘체면문화’가 남아 있는 한국에선 드문 현상”이라며 “CEO도 자신의 경력 개발을 위해 다양한 기회를 찾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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