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 외면에 건설사 “울고 싶어라”

  • 입력 2007년 10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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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이 건설업체의 대표적인 자금 조달 수단인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 매입을 기피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시장이 침체 상태인 데다 대규모 미분양까지 겹쳐 가뜩이나 현금이 부족한 중소 건설업체들이 ABCP를 이용한 자금 조달마저 막히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자산운용사 ABCP 매입 비중 급감

“대기업이나 연기금 고객들이 투자를 시작할 때부터 ABCP는 아예 투자 대상에서 빼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합니다.”(A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장)

“기관투자가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ABCP를 손해 보면서까지 털어 낸 적도 있어요.”(B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

채권 운용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C자산운용사는 올해 상반기까지 채권 펀드, 머니마켓펀드(MMF) 등에 ABCP를 7000억 원가량 편입했지만 최근에는 3000억 원 정도만 매입해 운용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시장 침체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을 계기로 부동산 PF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24일 본보 의뢰로 한국펀드평가가 채권형, 혼합형, MMF 등 펀드의 ABCP 매입 현황을 조사한 결과 펀드 개당 ABCP 평균 편입비율은 2005년 12월 5.79%에서 올해 3월 14.58%까지 올랐다가 7월 말에는 7.24%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ABCP를 유가증권이 아닌 대출로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도 은행들의 ABCP 투자 의욕을 떨어뜨린 요인이다. ABCP 매입액이 대출로 잡히면 이를 인수한 은행들은 신용보증기금 출연료 등을 추가로 내야 해 부담이 커진다. 이에 따라 일부 은행은 ABCP 매입 비중을 줄이고 있다.

○ 건설업체와 저축은행 책임론도

시행사가 ABCP를 발행해 집을 짓고 분양을 마치는 데는 약 2년이 걸린다. ABCP의 만기 시점이 보통 3개월인 것을 감안하면 8번 이상 차환발행(채권이나 어음의 원금을 돌려주기 위해 새롭게 채권 등을 발행하는 것)을 해 자금을 모아야 사업을 마칠 수 있는 셈이다.

시행사는 이 기간에 은행이 매입약정을 해 줘야 신용등급을 높게 받아 금리를 낮출 수 있다. 자산운용사들은 은행이 매입약정을 한 ABCP만 편입하려고 하기 때문에 은행이 ABCP 매입 비중을 줄이면 자산운용사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자금 조달 방법이 간편하면서도 금리가 연 5∼6%대로 저렴한 ABCP를 대체할 만한 대출 수단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은행과 자산운용사들이 발행된 ABCP를 사도록 유인하려면 금리를 올려 줘야 하는데 중소 건설업체들은 금리가 단 1%포인트만 올라가도 휘청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PF의 추가 부실을 막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굿모닝신한증권 윤영환 연구위원은 “주택 수요가 부족한 곳에 무리하게 PF를 일으킨 건설업체와 이들에 무턱대고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 등은 시장 논리에 따라 퇴출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

시행사가 아파트 등을 지을 때 사업자금을 대기 위해 시공사의 지급보증과 은행의 매입 약정을 거쳐 발행하는 만기 1∼3개월짜리 기업어음. 분양 수익 등 장래의 사업성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 때문에 신용도가 떨어지는 업체들도 비교적 싼 금리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간접 자금조달 수단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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