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덕환]稅收 늘리려 기름값 고통 외면해서야

  • 입력 2007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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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기름값에 대한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이런 가운데 정유사가 폭리를 취한다고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 측면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비난을 받아야 할 곳은 충분한 명분이나 효과 없이 막대한 세금만 거둬들이는 재정경제부다. 정유사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한 뒤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 휘발유의 원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자동차는 원가 계산이 비교적 간단하다. 부품 비용, 인건비, 기타 경비를 합친 후에 적절한 이윤과 세금을 합치면 된다. 정유회사가 생산하는 휘발유는 다르다. 정유공장에서 원유를 정제하면 휘발유, 나프타, 등유, 경유, 중유(벙커유), 아스팔트, 윤활유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각각의 제품이 분리돼 생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제품별로 정확한 원가 계산을 하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정유사는 국내와 국제 시장의 수요에 따라 전략적으로 가격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각 제품의 이윤을 분리해서 알아낼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정유사가 무엇을 감추기 때문이 아니라 생산하는 제품의 특성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경부가 발표한 휘발유의 ‘정제 마진’은 의미가 없다.

더욱이 휘발유에는 옥탄값을 조절하기 위해 상당한 양의 첨가제(MTBE)를 넣어야 한다. 첨가제도 원유를 가공해서 생산한다. 원유값이 오르면 첨가제 가격이 올라가고 재경부가 계산한 방식의 정제 마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재경부가 그런 사실을 몰랐다는 점도 문제고 알았다면 더 심각한 문제다. 어떤 경우거나 재경부의 발표는 치솟는 원유가격으로 심각하게 고통 받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자료가 아니다.

휘발유의 국제 시세에 대한 논란도 의미가 없다.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국제 시세는 평균일 뿐이다. 국제 시세는 휘발유의 종류(옥탄값)와 지역에 따라 크게 다르고 하루에도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시세의 변화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국내 시세가 반드시 국제 시세를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경제학 법칙도 없다.

물론 정유사는 고통 받는 국민을 위해 기름값을 낮추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에게 신뢰를 받기 위한 더욱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원유가격이 내려갈 때는 정유사가 꼼짝하지 않다가 올라갈 때는 민첩하게 움직인다는 비판에는 우리 모두가 공감한다. 정유사의 가격 결정 전략이 현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정유사에 대한 비난은 정유사 편에서는 자업자득인 셈이다.

기름값이 비싼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과도한 세금이다. 정부가 한 제품에서 세수의 18%를 거둬들인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시중에 가짜(유사) 휘발유가 유통되는 것도 세금 때문이다.

과도한 유류세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 고집 부릴 일이 아니다. 과도한 유류세는 자칫하면 경제를 망쳐버릴 수 있다.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이 분명한 휘발유 완제품에 대한 관세 인하로 국민을 우롱하는 일도 그만둬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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