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위 경제권 탄생…동맹과 경쟁의 ‘KORUS’

  • 입력 2007년 4월 2일 2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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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타결로 한국은 지금껏 없던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맞게 됐다.

FTA 타결로 세계 최대인 미국 시장이 열리면서 한국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열렸다.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다고 평가받는 국내 서비스업 등도 전환기를 맞게 됐다.

반면 농업 등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내 산업은 무한 경쟁에 노출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작업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협상 결과에 대해 경제, 통상 전문가들은 대체로 "우려 이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쪽의 일방적 손해 없이 양쪽 모두 실리를 챙기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사회가 이번 협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협상의 최종적인 성적표가 매겨질 전망이다.

●사상 초유의 대규모 개방 실험

전문가들은 한미 FTA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을 때 이상으로 한국의 개방수준을 크게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WTO 가입을 통해 한국이 중진국 도약에 성공했다면, 한미 FTA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는 평가다. FTA 체결을 통해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한국의 17배인 미국이라는 거대 시장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은 431억8400만 달러로 전체 수출(3254억6500만 달러) 중 13.3%였다. 비중으로 봤을 때 중국(21.3%)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동아시아 한중일 3국 중 제일 먼저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는 것도 의미 있는 대목이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이겨내고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도 커졌다.

일본은 이미 한국이 미국과 FTA를 맺는데 강한 경계심을 표시하고 있다.

하타케야마 노보루 국제경제교류재단회장은 최근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한미 FTA가 일본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관료 출신의 통상문제 전문가인 그는 이 글에서 "한국 제품이 거대한 미주 시장에 무관세로 들어가고, 일본 제품은 평균 4% 내외의 관세를 지불하게 된다"며 "한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일본 기업도 생겨 일본 경제는 공동화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으로서도 한미 FTA의 의미는 남다르다.

일단 규모 면에서 1994년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최대다. 중장기적으로 세계 최대의 경제권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큰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급부상을 견제할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효과도 있다.

경희대 성극제(경제학) 국제대학원장은 "이번 한미 FTA 협상에서는 최근 태국, 말레이시아 등과 FTA를 맺는데 실패한 미국 측의 타결 의지가 대단히 강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협상 총점은 몇 점일까

한미 FTA 최종 협상이 심한 산통(産痛)을 겪고도 결국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양국의 이해가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부 부문으로 들어가면 어느 한쪽은 양보하고 다른 한쪽은 이익을 취하는 '제로 섬 게임'의 양상을 띄게 된다. 이 때문에 양국은 '연장전'을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빅 딜'을 시도했다.

우선 미국 측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쇠고기 시장 개방과 관련해 한국 측은 상당한 양보를 했다. 한국 정부는 5월 국제수역기구(OIE)에서 미국 산(産)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평가가 나올 경우 수입을 개방하겠다는 '구두(口頭) 약속'을 미국 측에 해줘야 했다.

반면 한국 측은 쇠고기 관세를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하하는 양보를 받아냈다. 한국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쌀'을 개방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시킨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미국 측이 한국산 3000cc 급 미만 승용차와 부품에 물리는 관세를 즉시 없애기로 한 것도 한국이 크게 얻은 부분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 개방은 한국 정부가 이번 FTA를 통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핵심 목표였다. 이를 위해 한국 측은 자동차세, 특별소비세 등 세제를 바꾸는 양보를 해야했다.

이처럼 많은 부분에서 주고, 받는 게임이 이뤄지다보니 총점을 매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한 통상 전문가들의 전반적 평가는 "기대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서울대 박태호(경제학) 국제대학원장은 "전체적으로 볼 때 당초 우려보다 잘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서비스 분야의 개방 수준은 아쉽지만 상품 분야 등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으며 민감한 분야에서 서로 배려가 이뤄진 '윈-윈 게임'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인하대 정인교(경제학) 교수도 "정부가 협상 성과를 놓고 국내에서 공격적으로 '세일즈'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잘 됐다"면서 "한국이 과거에 했던 협상의 경험을 살려 상당히 잘한 협상으로 명분과 실리를 양측이 잘 주고 받았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 중장기 손익, 향후 대응에 달렸다

상당한 협상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의 중장기적인 손익 계산서를 뽑기는 어렵다.

그러나 NAFTA를 비롯해 46개국과 FTA을 맺은 멕시코가 지난해 세계 8대 무역강국으로 성장한 데서 긍정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멕시코 정부는 NAFTA로 100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GDP도 40% 증가했으며 제조업 노동생산성이 70% 향상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KIEP도 한미 FTA 체결에 따라 한국의 실질 GDP가 중장기적으로 1.99%, 일자리는 10만여 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1인당 국민소득도 약 30만 원, 4인 가족 기준으로 연간 소득 120만 원의 소득 증대 효과도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대미(對美) 수출은 15.1%, 수입은 39.4% 각각 늘면서 무역수지 흑자는 51억 달러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한미 FTA의 효과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 숨겨진 부분이 더 크다고 말한다. 경제 성장이 한계에 부닥쳐 답보상태이지만 FTA가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 경제 시스템과 경쟁하면서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한국에 남겨진 숙제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FTA로 이익을 얻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분열된 국론을 다시 한데 모을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도 절실하다. 피해를 볼 사람들을 위한 지원책도 치밀하게 추진돼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산업전략본부장은 "한미 FTA의 타결은 성공의 열쇠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닥친 새로운 도전"이라며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국경제는 선진 경제를 이루느냐, 아니면 더 혼란스러워져 지체의 늪에 빠지느냐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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