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영진]美대법 親기업 판결의 의미

  • 입력 2007년 3월 23일 03시 02분


코멘트
미국 연방대법원은 최근 대형 벌목회사가 경쟁사업자를 시장에서 내몰 목적으로 목재의 구입 가격을 인위적으로 인상한 혐의에 대해 7900만 달러를 배상하도록 했던 하급심판결을 공정거래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작년에는 경쟁사 관계인 세계적 대형 석유회사 셸과 텍사코가 서부지역에서 휘발유를 판매하기 위해 설립한 합작회사가 단일 휘발유 가격을 설정해도 담합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또 프린터헤드의 특허권을 이용해 비특허 제품인 잉크를 끼워 판 행위가 위법하기 위해서는 특허권의 존재만이 아니라 시장지배력이 입증돼야 한다는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기업활동 위축 없도록 신중한 판결

공정거래법은 미국에서 태동했다. 1890년 존 셔먼 상원의원이 당시 만연한 포퓰리즘에 힘입어 거대 기업의 횡포를 막으려고 셔먼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정했다. 공정거래법은 미 연방대법원이 ‘기업의 마그나카르타’라고 선언할 정도로 경제시스템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100개 이상의 국가가 일정한 형태로 공정거래법을 운영하고 중국도 가까운 장래에 도입할 것으로 알려지는 등 공정거래법은 전 세계적으로 경제헌법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는 공정거래위원회라는 행정부 기관이 공정거래법 집행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데 반해 미국은 영미법계 국가의 전통에 따라 법원이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역사적으로 미 법원의 공정거래법 적용 강도와 역할은 부침을 거듭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얼 워런 대법원장 시절에는 미국의 공정거래법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교조적인 공정거래법을 적용했다. 수많은 기업의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반(反)경쟁적이라는 이유로 제재를 받았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미 보수주의의 요람인 시카고대를 중심으로 공정거래법 분석에 경제학을 광범위하게 적용하자는 지적 운동이 태동했다. 그 결과 1970년대 후반부터 신자유주의적인 사조가 행정부와 법원에 강한 영향을 미쳐 시장 메커니즘을 좀 더 신뢰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을 적용했다.

앞에서 언급한 연방대법원의 태도도 근본적으로는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난 30여 년간 미 법원의 미래지향적 태도를 반영한다. 연방대법원은 기업의 경제적 행위 동기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국가의 개입으로 기업의 창의성과 자유가 침해될 여지가 없도록 정치한 법리를 제시해 왔다.

위 판결 중 두 개는 대법관 9명 중 보수 성향인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이 했고 나머지는 진보 성향의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이 했다. 연방대법원이 보수 및 진보의 정치적 이념을 떠나 공정거래법 집행이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위축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美법원의 노력 우리도 본받아야

경쟁법의 집행 목적은 시장에서의 경쟁을 제고해 독점의 폐해를 시정하는 동시에 기업의 창의와 혁신을 촉진하는 데 있다. 법 집행으로 이런 목적이 훼손될 우려가 있는 경우 집행을 자제해야 한다. 반면에 이런 목적의 달성을 촉진하는 경우 집행이 정당화된다.

공정거래법의 목적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한 이론과 구체적인 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미국의 경우 대상 행위의 경제적인 동기와 시장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정치한 분석을 한다. 법을 적용할 때도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위축시킬 수 있는지, 즉 잘못된 적용(false positives)에 대한 우려를 충분히 고려한다.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 적용에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다.

정영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