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교육 이대로는 안된다]“기업-대학간 융합만이 살길”

  • 입력 2007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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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무 서울대 총장(오른쪽)과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15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평소 무한 기술경쟁 시대를 맞아 대학과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상생’뿐이라고 강조해 온 두 사람은 이날도 산학협력을 위한 ‘만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신원건  기자
이장무 서울대 총장(오른쪽)과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15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평소 무한 기술경쟁 시대를 맞아 대학과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상생’뿐이라고 강조해 온 두 사람은 이날도 산학협력을 위한 ‘만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신원건 기자
《세계는 지금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산업계와 과학계가 따로 놀아서는 기업도, 대학도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이장무 서울대 총장과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과학계와 산업계 어떻게 상생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15일 특별대담을 갖고 한국의 산학(産學)협력 상황을 진단하면서 대안을 제시했다. 이 총장은 6년이나 서울대 공대 학장을 맡았던 이공계 출신 대학총장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자랑하는 포스코를 이끄는 이 회장도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를 나온 대표적인 이공계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이번 대담은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서울호텔에서 본보 경제부 김광현 차장의 사회로 1시간 반가량 진행됐다.》

―대학과 산업계 모두 산학협력이 잘 안 된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 같습니다.

▽이장무 총장=대학과 기업의 눈높이가 서로 달랐습니다. 과거엔 대학의 연구 개발 방향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맞춰져 있었어요. 반면 산업계는 선진국을 추격할 기술을 대학에 요구해 왔습니다.

▽이구택 회장=본격적인 산학협력이 이뤄진 것은 10년밖에 안 됐습니다. 그 전까지 대부분의 기업은 경쟁 상대 기술을 벤치마킹하는 등 혼자 힘으로 생존해 왔습니다. 또 대학이 교수를 평가할 때 특허 출원 건수나 산학협력 건수를 별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국제과학인용색인(SCI)에 실릴 기초과학 논문 중심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요즘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이 총장=대학이 산업체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학문 중심, 연구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대학의 이론 중심 연구가 불가피한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대학이 산업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산학협력에 대한 기여도가 교수 평가에 포함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회장=산학협력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은 기업 탓도 있습니다.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요구를 한 것 같습니다. 최근 포스코는 연구비를 지원받는 교수가 단기가 아니라 3년 동안 한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습니다. 첨단연구도 좋지만 기업과 산업의 성숙도에 맞는 연구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철강 분야에서도 첨단 연구라고 해서 모두 산업을 발전시키는 구실을 한 것은 아닙니다. 정부나 기업의 연구 지원이 나노, 바이오, 정보기술(IT) 등 유행을 좇는 쏠림현상이 있는데 이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이 총장과 이 회장은 기술 인력을 배출하는 현재 시스템에는 문제가 많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제시한 해법은 조금씩 달랐다.

―이공계 인력은 많은데 쓸 만한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이 총장=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82.1%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독일과 일본의 진학률 51%에 비해 꽤 높은 수치입니다. 대학이 질적 발전보다 양적 팽창에 치중하다 보니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생긴 것입니다. 산업체도 이제 더는 고급 인력의 수요자가 아닌, 생산자와 수요자의 역할을 모두 하는 ‘프로슈머’가 돼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수인력을 뽑고 양성하려면 대학의 자율적인 학생 선발을 보장해야 합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63%에 불과한 고등교육 투자 비중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모색해 봐야 합니다.

∇이 회장=대학에서 가르치는 전문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어차피 사원 교육은 기업의 몫입니다. 문제는 영어나 컴퓨터 등 기본소양도 기르지 않고 들어오는 경우입니다. 대학에서 이 부분을 확실하게 해결해 줘야 합니다. 대학에서의 주입식 교육도 바뀌어야 합니다. 최근 신입사원들이 가장 어렵다고 여기는 부분이 문제 해결 능력의 부족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주입식 교육은 창의성의 상실을 불러옵니다. 또 대학마다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특화됐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원에서도 논문 주제를 기업들과 공동으로 협의해 연구를 진행하고 논문이 나오면 취업시켜 주는 제도를 도입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공부 잘하는 이공계 학생들이 의학 치의학 법학 분야로 빠져 나간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이 총장=나는 나쁘다고 보지 않습니다. 의학 역시 범이공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료도 의사 중심에서 최신 의료기술로 구심점이 바뀌고 있습니다. 법학과 이공계 소양이 필수인 지적 재산도 중요한 화두입니다. 이공계 출신자들이 여러 분야로 진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공계 출신이 불안하다는 것에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공계 취업률은 76.5%로 66.4%인 인문사회계 보다 높습니다. 첨단 대기업에서 이공계 CEO 수도 늘고 있습니다. 이공계 미래는 한마디로 밝습니다.

여기에는 의대, 법대 등 단과대 모두를 배려해야 하는 대학 총장으로서의 배려가 엿보였다. 하지만 이 회장은 제조업이 산업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나타냈다.

∇이 회장=일본의 전통 제조업이 강한 이유에 주목해야 합니다. 보통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만드는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상황이 다릅니다. 사회가 제조업을 주목하고 이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당연히 거기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은 힘을 얻지 않겠습니까. 한국이 앞으로 살 길은 기술밖에 없다는 인식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특히 요즘은 인터넷 때문에 급격한 속도로 벤치마킹, 베끼기가 일어납니다. 한국은 이제 기술 없이 베껴서 먹고살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기본소양도 못갖춘 졸업생 많아
기업 맞춤형 인재 키우기 위해선
대학원 연구 공동진행 고려할만

―학계와 산업계 모두에서 컨버전스(융합)가 화두입니다. 서울대와 포스코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 총장=서울대에서는 내년 2월 융합기술원이 문을 열 예정입니다. 인간공학 나노과학 등 통합학문과 산학협동 연구를 중심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 회장=포스코에서도 철강뿐 아니라 자동화나 환경 등 더 넓은 영역의 연구가 필요합니다. 인재 육성을 위해 포스코는 2005년 9월 포스텍(포항공대)에 철강전문대학원을 개원했습니다. 대학과 기업의 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죠.

▽이 총장=그런 시도가 바로 프로슈머로서의 기업 모습이라고 봅니다.

▽이 회장=요즘은 기업에서 요구하는 교과과정을 짜 맞춤형 인재를 길러 주겠다는 대학도 늘었습니다. 기업도 끊임없이 사원을 교육하죠. 기업 교육을 대학과 연계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겁니다.

이 총장과 이 회장은 이제까지 산학협력이 미진했던 것은 아이디어나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 없었고, 서로 소통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똑같은 정책이라도 구성원들이 얼마나 합심해 실천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죠.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입안돼도 말만 하고 행동을 안 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이 총장=앞으로 학계와 산업계가 서로 더 자주 만나야겠습니다.

▽이 회장=포스코의 연구원 중 대학으로 빠져나가는 인력이 많아요. 처음에는 화가 났죠. 하지만 이들이 지금은 훌륭한 네트워크 역할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젠 대학에서 좀 더 스카우트해 가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이런 네트워크가 대학과 기업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 주니까요. 마음을 열고 서로 이해하고 신뢰하면 산학협력도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이장무 서울대 총장(62)

△1967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1997∼2002년 서울대 공대학장 △2000년 대한기계학회장 △2003∼2004년 과학기술부 기술영향평가위원회 초대위원장 △2004∼2006년 신재생에너지학회장 △2006년∼현재 서울대 총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61)

△1969년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1994∼1998년 포항종합제철소장 △1998∼2003년 포항종합제철 사장 △2003년∼현재 포스코 회장 △2003년∼현재 한국철강협회장 △2005년∼현재 국제철강협회 부회장 △2006년 인촌상 수상

사회=김광현 경제부 차장

정리=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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