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현대차, 밤새 안녕하십니까

  • 입력 2007년 1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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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터넷 세계에선 현대자동차가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규모와 강도다. 노조의 시무식 폭력사태 등 ‘참 나쁜’ 콘텐츠가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현대차가 ‘오랜 세월 쌓아 온 노력에 대한 평가’인 평판(評判)이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는 중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광장인 ‘아고라’에는 현대차 노조의 시무식 폭력사태가 있었던 3일부터 23일까지 대략 15만 건이 넘는 게시물과 댓글이 올라왔다. 현대차를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사측이 미지급 성과급 50%를 주기로 한 17일부터 현대차 무기한 불매운동까지 시작됐다. 23일 오전까지 3만2000여 명이 서명했을 정도다. 누리꾼들이 만들어 뿌리는 글, 동영상 등 현대차 관련 손수제작물(UCC)을 찾아보려면 끝이 없을 정도다. 현대차가 UCC의 원재료를 제공해 온 탓이다.

불매 서명에 동참한 ID ‘누구게여’는 “국익은 생각 않는 현대차 노조나 그런 노조에 무릎 꿇은 회사. 아무리 차가 좋아도 안 산다”라고 글을 올렸다. ‘OBscabin’은 “더는 미련 두지 말고 우롱당하지 맙시다. 강성 노조에 디트로이트의 신화는 무너졌습니다”라고 지적했다.

‘구염둥이’는 “국민의 간절한 바람마저 무시하는 안하무인의 현대차”라고 썼다.

웹 2.0 시대에는 누리꾼들이 직접 동영상과 각종 게시물 등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며, 소비한다. 이전에는 ‘댓글 달기’ 수준에 머물렀던 이들이 정보와 여론의 직접적인 생산자가 된다는 뜻이다. ‘웹 2.0 경제학’의 저자인 김국현 씨는 “이상계(인터넷)에서의 평판 시스템은 현실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앞으로 현실계의 평판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이미 정치인들은 인터넷의 위력을 절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몬태나 주 공화당 상원의원 콘래드 번스(72) 씨는 동영상 UCC 한 방으로 낙선했다. 이 동영상은 라이벌이 고용한 파파라치가 제작했다. ▶본보 13일자 1·3면 참조

UCC의 융단폭격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의 입지는 현실세계에서 아직 튼튼한 편으로 평가된다. 괜찮은 품질 덕분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노사관계만 정상화되면 저돌적인 시장개척 능력과 빠른 품질 개선 속도를 바탕으로 좋은 평판을 회복할 기회가 여전히 많다. 하지만 현대차가 올해도 노사분규 등 나쁜 콘텐츠를 계속 제공한다면 미래는 정말 어둡다.

세계 자동차업계의 요즘 인사말은 ‘밤새 안녕하십니까’라고 한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살벌한 글로벌시장에서 나쁜 평판을 얻고도 살아남을 길은 없다. 이미 최고 평판을 얻고 있는 도요타도 노사 안정, 좋은 품질로 평판 관리에 전력을 쏟고 있다.

24일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 시작되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5대 과제 가운데 하나로 ‘기업 평판 관리’가 제시됐다. ‘정보전염병(Information Epidemics)에서 살아남기’ 세션까지 열린다. 기업 리스크나 비윤리 경영에 대한 루머는 인터넷을 타고 전염병처럼 빠르게 확산되며 기업을 순식간에 위기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나쁜 평판이 퍼지면 기업은 모든 것을 잃는다.

현대차 노사는 ‘평판을 얻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쉬운 웹 2.0 시대’를 직시(直視)하기 바란다.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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