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논두렁서 아이디어 얻어
“서울에서 오셨다고요?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현관문을 열자 신발을 개발해 1990년 MBT를 설립한 카를 뮐러(54) 전 회장이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취리히공대에서 기계제어공학을 전공한 뮐러 씨는 1976년 스위스에서 사귄 한국인 친구를 따라 한국을 방문했다가 지금의 한국인 부인을 만났다.
“요양을 하면서 시골에 머물고 있을 때였지요. 추수가 끝난 논두렁을 걷다가 푹신한 흙을 밟을 때 통증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어요. ‘바로 이거다’ 싶었죠.”
1989년 한국을 떠나 고향 로그윌로 돌아간 그는 1년간의 연구 끝에 맨발로 흙 위를 걷는 느낌을 주는 신발을 개발했다.
MBT는 ‘마사이족처럼 맨발로 걷는 느낌을 주는 기술’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마사이족이 맨발로 생활하며 건강하게 평균 80∼90세까지 산다는 점에 착안한 것. 뮐러 씨는 “MBT를 신어 봐야 회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며 매트가 깔려 있는 2층 강당으로 안내했다.
“맨발로 매트 위를 걷다 MBT를 신고 매트 밖 바닥으로 내려와 걸어 보세요.”
MBT를 신고 걸으니 맨발로 매트 위를 걸을 때처럼 푹신푹신했다. 허리와 가슴이 펴지면서 자세가 꼿꼿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신발을 살펴보니 일반 운동화보다 밑창이 두 배가량 두꺼운 데다 반달처럼 동그랗게 휘어져 있다. 신발을 신으면 발바닥 전체가 바닥에 붙지 않고 3분의 2 정도만 땅에 닿았다.
MBT 국제 마케팅 담당자인 안드레아스 디트레트 씨는 “일반 신발은 발바닥이 ‘뒤꿈치→앞꿈치’ 순으로 두 번 만에 땅에 닿지만 밑창이 둥근 MBT는 ‘발바닥 바깥→뒤꿈치→발바닥 안’ 순의 세 단계로 살짝 굴리듯 발을 내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무릎, 허리 등에 충격을 주지 않는다는 것.
디트레트 씨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MBT는 밑창이 바닥과 완전히 밀착되지 않기 때문에 몸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무의식중에 무릎, 허리 등 근육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운동을 하게 만듭니다.”
MBT가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건강 신발’이라고 하면 발이 편한 신발이었다. 하지만 MBT는 발이 편할 뿐만 아니라 운동까지 시켜 주는 신발로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소비자들은 MBT를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발에 신는 운동 기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 연간 매출액 5% 연구 개발 투자
MBT의 고속 성장 비결은 신발의 품질에만 있지 않다.
MBT는 각 매장에서 걸음걸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신발을 파는 기업’이 아니라 ‘올바른 걸음법을 알리는 기업’이라는 마케팅 전략을 사용했다.
MBT 매장을 ‘판매점’ 대신 ‘마사이 워킹 센터’라고 이름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마사이 워킹 센터에는 트레드밀이 비치돼 있다. 고객들은 MBT가 제시한 건강 프로그램에 맞춰 직접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신발의 품질과 디자인 개선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MBT는 캐나다, 독일, 스위스, 영국 등의 의대와 공동연구를 실시해 1년에 두 번씩 업그레이드된 신발을 선보이고 있다.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비용만 연간 매출의 5% 정도.
신발 생산은 중국과 베트남 공장에서 하는데, 신발의 핵심인 밑창은 한국 부산에 있는 공장에서만 만든다. 한국은 인건비가 비싸지만 기술력이 뛰어나 밑창 생산 지역은 한국을 고집하고 있다.
디트레트 씨는 “허리와 무릎이 아픈 사람,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게 살길 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MBT의 고객”이라며 “많은 사람에게 건강을 선사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창업자 뮐러 전회장, MBT 팔고 피트니스센터 열어
“센터名 ‘기분’… 도전하는 삶이 즐거워요”
MBT 창업자인 카를 뮐러(사진) 전 회장은 최근 회사를 오스트리아의 한 사업가에게 매각했다.
그 이유에 대한 뮐러 씨의 설명이 좀 엉뚱하다.
“MBT가 성공을 거둬 기반이 잡히자 재미가 없어졌어요. 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훨씬 즐거워요.”
그렇다고 해서 MBT와의 ‘끈’을 놓은 것은 아니다.
새 사업은 일종의 피트니스센터로, MBT를 신고 각자 프로그램에 따라 걷고 뛰는 운동을 하는 곳이다. 현재 무릎 관절, 허리가 아프거나 고혈압이 있는 경우, 발목을 다친 경우 등 증상별로 각각 다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피트니스센터 이름을 ‘기분(Kybun)’이라고 지었다. ‘기분 좋은 삶’을 만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한국어에서 따온 것. MBT로 세계를 휩쓴 뮐러 씨의 또 다른 야심작인 셈이다.
지난해 중반부터 스위스 장크트갈렌에서 시범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정식 오픈도 하지 않고 준비를 하는 단계에서 석 달 만에 100여 명이 모여들었다. MBT와 마찬가지로 역시 입소문을 통해서다.
그는 ‘기분’을 세계적인 피트니스 체인으로 키울 예정이다. 올해 안에 한국에도 문을 열 계획.
하지만 쟁쟁한 대형 피트니스 체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분’은 그냥 운동을 하는 곳이 아니라 올바른 걷기와 뛰기를 통해 각종 문제를 치유해 주는 곳이 될 겁니다. 일반 피트니스센터와는 시장이 다르지요.”
한편 뮐러 씨는 자신의 이름을 딴 KM재단을 설립해 아프리카와 한국의 고아들을 돕는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도 하고 있다.
그는 매년 자신의 수입 중 10%를 KM재단에 기부한다. MBT 사업 아이디어를 얻게 해 준 마사이족이 교육시설과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케냐, 탄자니아 등에 사는 마사이족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급수시설을 설치해 주기도 했다.
취리히=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