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살리기’ 귀 막은 금감원

  • 입력 2006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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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4000만 원을 주식형펀드에 투자한 정기용(44·자영업) 씨.

그는 요즘 펀드에서 돈을 뺄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올해 수익은 지난해의 5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매년 증권회사가 떼어가는 판매보수는 가입 당시만 해도 60만 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100만 원을 훌쩍 넘어 버렸다. 수익도 뚝 떨어졌는데 증권사에 꼬박꼬박 수수료를 떼이니 여간 아까운 게 아니다.

주변에 정 씨와 비슷한 심정의 펀드 투자자가 적지 않다.

22일 펀드평가회사 제로인에 따르면 설정잔액 100억 원이 넘는 178개 주식형펀드에서 이달 1일부터 17일까지 빠져나간 돈만 2385억 원.

○강제력 없는 개선 방안 유명무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1월 ‘펀드판매회사의 판매보수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큰 뼈대는 펀드 장기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높은 판매보수 체계를 바꾸겠다는 것.

펀드 가입 초기에 한국의 투자자들이 내야 하는 판매보수 부담은 미국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하지만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늘어나 상황은 역전된다.

미국 펀드는 최초 가입시점에 비교적 높은 판매수수료를 한 번만 받는다. 하지만 한국은 그보다 낮은 판매보수를 매년 조금씩 뗀다.

연 1.5% 정도의 판매보수를 해마다 낼 경우 4년 뒤부터는 판매보수율 부담이 미국 투자자보다 점점 더 커진다.

이처럼 기존의 펀드 보수체계로는 3년 이상 장기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금감원이 내놓은 개선방안은 2가지.

하나는 판매보수율이 낮은 인터넷펀드를 많이 만든다는 것이다. 또 선취 판매수수료를 떼는 대신 투자를 오래 할수록 보수율이 낮아지는 멀티클래스펀드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개선방안은 강제력이 없다. 이 때문에 대책의 효과는 1년이 지나도록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1년 전 6개였던 인터넷펀드는 26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규모는 미미하다. 총설정잔액은 약 780억 원으로 전체 펀드의 0.05%일 뿐이다.

비교적 판매가 잘돼 설정잔액 100억 원이 넘은 상품은 겨우 3개에 그친다. 26개 가운데 18개는 설정잔액이 10억 원도 안 됐다. 1억 원이 안 되는 펀드도 13개다.

멀티클래스펀드는 148개에서 174개로 25%가량 늘었다. 하지만 보수율은 그대로 둔 채 펀드 이름만 바꾼 게 대부분이어서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펀드평가 박현철 연구원은 “금융당국의 권유로 많은 기존 펀드에 형식적으로 클래스펀드가 추가됐을 뿐”이라며 “투자기간이 길어질수록 보수율을 낮춰 주는 멀티클래스펀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내년 주가 따라 환매 분수령 될 듯

펀드 판매회사로선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금융당국의 방침을 따를 필요가 없다. 금융당국의 개선안은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은 없다.

각 증권사가 내놓기 시작한 2007년 주가전망도 그리 밝지 못해 환매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선임연구원은 “주가 상승세가 내년쯤이면 대충 마무리될 것”이라며 “그동안 시장을 관망하던 펀드 투자자들의 환매가 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금융당국의 어설픈 대책이 투자자들의 불신을 산 데다 눈앞의 이익만 챙기는 증권업계도 문제”라면서 “펀드시장 기반이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박원호 자산운용감독국장은 “대부분 3년인 펀드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은 내년이 아니라 2008년”이라며 “아직 시간이 남은 만큼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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