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경영]서류만 화려한 ‘헛똑똑이’는 가라

  • 입력 2006년 11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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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스펙(spec)’ 좋은 사람보다는 현장에 보냈을 때 펄떡펄떡 살아서 뛸 수 있는 실무형 인재에게 눈길이 더 가기 마련이죠.” 2006년 하반기 대규모 공개채용을 진행 중인 국민은행 인사부 김동익 팀장의 설명이다. 여기서 스펙은 영어 단어 ‘specification’에서 따온 말. 학점이나 자격증, 영어 성적 등 취업 때 제출하는 구직자의 객관적인 조건을 말한다. 한때 스펙은 취업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었다. 비교적 높은 연봉과 안정성에 끌려 구직자들이 대거 몰린 은행권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상황은 다르다. 스펙만 믿고 은행 취업의 문을 두드렸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채용제도 자체가 심층면접을 통한 실무능력 평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 스펙만 화려하고 실무능력이나 잠재력이 부족한 ‘헛똑똑이’는 철저하게 가려낸다는 얘기다. 각 은행의 채용제도는 최근 2, 3년 사이에 큰 변화를 겪었다. 은행의 채용 담당자들에게 ‘미니 채용설명회’를 부탁했다.》

○ 국민은행…상황 대처능력 평가하는 역량면접 강화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하는 역량면접이 핵심. 실무능력과 잠재력, 열정, 주도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절차다. 지원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국민은행 채용 담당자는 “역량면접 질문의 유형이 최근 달라졌다”고 귀띔했다.

과거의 질문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떤 일을 겪었고, 그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는가’였다면 지금은 ‘그런 일이 다시 닥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로 바뀌었다는 것. 상황 대처 능력과 전략적인 사고 능력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자질이나 인성도 중요한 평가 대상. 실무능력이 뛰어나도 인성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합격하기 어렵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채용에서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중국, 인도, 카자흐스탄, 러시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태국, 말레이시아 등 11개국 관련 학과를 전공했거나 3년 이상 체류한 사람을 우대할 예정. 이들 지역은 국민은행이 새로 진출하거나 영업을 확대할 계획이 있는 곳이다.

○ 우리은행…수재형보다 인적 네트워크형 인재 뽑아

2박 3일간 진행되는 실무자 면접이 우리은행 입사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절차. 실무능력 평가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도입했다.

실무자 면접 과정에서는 일반적인 테이블 면접부터 각종 활동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액티비티 면접, 집단토론, 프레젠테이션 등이 반복적으로 진행된다.

한 명의 지원자를 관찰하고 평가하는 사람은 평균 30명. 개인적 선호에 따른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하반기 공채에서는 약 600명의 지원자가 실무자 면접에 참여했다. 우리은행 인적자원(HR) 운용팀은 면접위원과 진행요원을 포함해 100여 명을 실무자 면접 과정에 투입했다.

HR 운용팀 이상철 부부장은 “실무자 면접에서는 개인평가 못지않게 팀워크도 중요하게 본다”며 “공부만 잘하는 사람보다는 인적 네트워크를 잘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한 제도”라고 소개했다.

○ 신한은행…팀워크-조직 적응력도 중요한 평가요소

1, 2차 등 두 단계의 면접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다른 은행과 비슷하다. 면접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성실성과 일에 대한 열정.

신한은행 채용 담당자는 “지원자들의 능력은 대부분 일정 수준에 올라와 있을 정도로 뛰어나 (장점이 아닌) ‘기본’이 된 상황”이라며 “서류전형과 실무자 면접, 임원 면접 등 전형 단계 별로 일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있는지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팀워크와 조직 적응력도 중요한 평가 요소다. 개인이 기업 문화에 얼마나 슬기롭게 적응하는지에 따라 성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

이 같은 전형을 거쳐 입사한 직원들은 스스로 경력개발경로(CDP·Career Development Path)를 설계한다.

자신의 적성과 능력, 경력 등을 감안해 소매금융, 프라이빗뱅킹(PB), 외환 등으로 나눠 희망 업무를 선택하고 본격적인 금융 전문지식을 쌓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 하나은행…전공제한 철폐… 일에 대한 열정 측정

전공과 경험의 다양성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하나은행 인력지원부 조기평 차장은 “상경계열 전공자가 채용 때 우대받는다는 생각은 하나은행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며 “전공 제한을 철폐함으로써 이공계는 물론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공자를 폭넓게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강한지, 상대를 얼마나 잘 배려하는지 등을 측정하기 위해 최근 면접 시스템도 대폭 손질했다. 테이블 면접 외에 집단 과제, 개인 프레젠테이션, 집단 토론 등을 보강한 것.

예컨대 ‘새로운 금융상품 기획’이라는 집단 과제물이 주어지면 지원자들이 팀을 이뤄 공동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서로 토론을 벌인다. 이때 면접위원들은 지식의 깊이, 고민의 수준, 상대에 대한 배려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올해는 인재를 미리 확보해 ‘하나은행 맞춤형 인재’로 길러내기 위해 인턴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프로그램을 수료한 52명 가운데 48명이 최근 진행 중인 정규 사원 공채에 지원했다. 이들은 서류전형, 필기시험, 1차 면접 없이 곧바로 2차 면접에 참가한다.

○ SC제일은행…인재 조기발굴 GA프로그램 올해 도입

올해부터 도입한 GA(Graduate Associate) 프로그램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스탠다드차타드(SC) 그룹의 인재경영 전략으로 능력있는 인재를 조기에 발굴해 은행의 혁신을 주도할 핵심 일꾼으로 키우는 것. 제일은행이 스탠다드차타드 그룹에 통합되면서 도입한 인재 육성 방식이다.

올해 상반기 홈페이지를 통해 2006년 졸업 예정자와 경력 3년 미만인 사람을 대상으로 처음 모집했다. 1, 2차 온라인 평가를 거친 뒤 개인 및 그룹 면접을 통과한 25명을 최종 선발했다.

이들은 앞으로 2년간 현장교육과 부서별 교육, 해외 워크숍 참가 등의 과정을 거칠 계획. 프로그램 종료 뒤에는 해외 근무 기회를 준다.

도입 당시 GA 프로그램은 은행권에서도 화제가 됐다. 대부분 3∼6개월의 신입사원 연수과정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2년 간의 집중적인 글로벌 교육은 흔하지 않은 사례이기 때문. SC제일은행은 GA 프로그램을 매년 운영할 계획이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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