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정부 ‘지역진흥사업’ 정면 비판

  • 입력 2006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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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들이 비슷비슷한 지역사업을 충분한 검토 없이 경쟁적으로 추진해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국책 연구기관이 강하게 비판했다.

현 정부가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에 집착해 단기성과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8일 이런 내용을 담은 ‘지역전략산업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산업자원부가 추진하는 지역전략산업진흥사업(지역진흥사업)의 문제점을 집중 분석했다.

○ 비슷한 지역사업만 16개

지역진흥사업은 △대구 부산 광주 경남 등 4개 지역 전략산업 지원 △대전 울산 강원 등 9개 지역 전략산업 지원 △전략산업 외 신규사업 지원 등 3개 분야로 나뉜다. 2008년까지 총 1조8073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 등 다른 부처들이 주관하는 지역특화클러스터 구축, 기술이전거점 구축 등 16개 사업도 지역진흥사업과 비슷하다.

KDI 고영선 재정성과평가실장은 “중앙 부처가 사업을 서로 조정하지 않는 데다 지방자치단체도 예산을 많이 확보하려고 동일한 사업을 각각의 부처에 신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지역진흥사업은 초기 준비가 부실해 중간에 사업의 큰 방향이 바뀌기도 했다.

전남 생물산업지원센터는 당초 농업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지만 지금은 의약품 분야로 지원 대상이 바뀌었다. 제주 하이테크산업진흥원도 지원 분야를 생물산업에서 화장품산업으로 변경했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가 전략산업을 수정하는 문제도 지적됐다.

경북의 지역 전략산업은 2002년에 전자정보기기, 디지털가전제품, 생물, 건강식품 등이었으나 2004년에는 신소재, 철강, 전자정보기기, 가전제품으로 바뀌었다.

○ 천편일률 지원… 간섭도 많아

산자부는 진흥사업 지역마다 4개씩의 전략산업을 정해 두고 있다.

이 보고서는 “지역별 특성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같은 수의 산업을 육성하는 게 적절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산업 추세를 감안할 때 서비스업의 생산과 고용 창출력이 대폭 향상된 만큼 제조업 중심으로 전략산업을 선정한 것도 잘못”이라고도 했다.

이를 반영하듯 지역진흥사업 실무자들은 정부 간섭이 많아 일하기 어렵다고 했다.

KDI가 지역진흥사업 지원기관인 지역특화센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0.7%가 “오래된 법과 규제 때문에 보통 수준 이상의 애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지역별 사업 평가체계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평가기관은 지역특화센터의 자립도를 중시하는데 다른 기관은 자립도보다는 공익활동을 강조한다는 것.

고 실장은 “현 평가체계가 지역산업 진흥이라는 정책목표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 “앞으로는 지원 안 돼”

지역진흥사업의 경제적 가치가 미미하다면 기존 투자는 고스란히 손실로 남는다. 이때는 추가 지원을 하지 않는 게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하지만 보고서는 “지역 반발과 정부 신뢰성이 손상될 수 있으므로 기존 사업을 끝낸 뒤 추가 지원을 하지 않는 게 적절하다”고 했다. 이미 시작한 사업은 낭비가 예상되더라도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민간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짧은 시간에 균형발전 성과를 내려다 보니 보조금만 지원하면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박정수(재무행정학) 교수는 “여러 부처의 비슷한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도록 관련 예산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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