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아파트 브랜드 ‘이중플레이’…이해따라 ‘불허’ ‘묵인’

  • 입력 2006년 5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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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성수동2가 금호타운 1차 아파트 주민들은 조만간 외벽 페인트를 다시 칠하면서 이름도 금호건설의 최신 브랜드인 ‘어울림’으로 바꾸기로 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그린한신아파트 주민들도 얼마 전 외벽을 칠하면서 한신공영의 새 브랜드인 ‘한신 휴 플러스’로 옷을 갈아입혔다.

최근 오래된 아파트 주민들이 새 브랜드로 아파트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대형 건설회사들은 원칙적으로 새 브랜드 발표 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이름을 바꿀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주민들은 아파트 이름을 바꾸려면 건설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건설회사들은 대부분 새 브랜드 보호 차원에서 이런 원칙을 정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래미안)은 2000년 초 래미안 발표 전에 지은 ‘삼성 아파트’의 브랜드 교체 요구에 공식적으로 응하지 않는다. GS건설(자이) 금호건설(어울림) 등도 마찬가지.

대림산업(e-편한세상)은 정보통신부가 인정하는 1등급 정보통신망을 갖추지 못하면 이전 브랜드인 ‘대림 아파트’가 새 브랜드로 바꿀 수 없도록 했다.

대우건설(푸르지오)은 친환경성 등을 인정받아 공인기관에서 상을 받은 아파트단지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브랜드 교체를 승인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스스로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주민들의 브랜드 교체를 눈감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민들이 자비를 들여 도색 작업을 하겠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강제 규정도 딱히 없다.

건설회사들이 브랜드 교체를 묵인하는 곳은 대체로 가격과 입지 면에서 비교 우위를 갖고 있는 단지들이다.

앞서 말한 금호건설의 성수동2가 금호타운 1차 아파트는 한강변에 있어 새 브랜드를 시민들에게 홍보하기에 유리하다.

대림산업은 동작구 대방동의 간판 대단지(1628채)인 ‘대림 아파트’ 주민들이 ‘e-편한세상’으로 교체하는 것을 묵인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한강이 잘 보이는 영등포구 당산동 ‘강마을 삼성아파트’가 ‘삼성 래미안’으로 바꾸는 것을 눈감아 줬다.

일부 회사들은 특정 지역의 간판 아파트 단지에 대해서는 새 브랜드로 바꿀 것을 먼저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의 아파트 이름이 특정 지역의 상징처럼 된 경우에는 주민들이 제안을 거절한다.

현대산업개발은 오래전부터 강남구 압구정동 구현대 아파트 주민들에게 새 브랜드(아이파크)로 교체할 것을 권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는 후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며 페인트칠 새로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전했다.

신동아건설도 용산구 서빙고동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신동아아파트 주민들을 상대로 새 브랜드인 ‘파밀리에’로 교체할 것을 권했으나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이 아파트에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등 유력 인사들이 많이 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회사에는 “어느 곳은 바꿔 주고, 우리는 왜 안 바꿔 주느냐”는 항의성 민원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부분의 회사는 아파트 벽면 브랜드를 바꾸는 것만 묵인하고 공부(公簿)상 이름은 이전 브랜드를 유지해 공정성 논란을 비켜가곤 한다.

이러면 서류상은 물론 부동산 정보업체 데이터베이스에도 이전 이름으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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