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esign]롯데 에비뉴엘,정원 갤러리 명품의 앙상블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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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의 출입문과 고급 리조트처럼 꾸민 에비뉴엘 내 식당 ‘타니’. 소비자의 동선을 최대한 줄인 신세계 백화점의 ‘블루핏’(위부터). 아래 ‘키즈 카페’는 신세계백화점의 아이 전용 놀이방. 사진 제공=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의 출입문과 고급 리조트처럼 꾸민 에비뉴엘 내 식당 ‘타니’. 소비자의 동선을 최대한 줄인 신세계 백화점의 ‘블루핏’(위부터). 아래 ‘키즈 카페’는 신세계백화점의 아이 전용 놀이방. 사진 제공=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쇼핑을 다니다 보면 자주 찾게 되는 백화점이나 매장 등이 생긴다. 할인권이나 구매 포인트 적립, 접근의 효율성, 브랜드 가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진열된 상품의 종류가 비슷하더라도 매장에 따라 호불호가 달라진다. 그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보이지 않는’ 공간 디자인의 매력에 동화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소비자의 동선을 짧게

서울 중구 충무로1가 신세계 본점 신관에 들어서면 ‘대형편집매장’ ‘멀티숍’의 분위기라는 인상을 받는다. 고급스럽고 잘 정돈된 기존 백화점 분위기와 다르다. 백화점에 입점하는 브랜드들은 임대 공간에 다양한 상품을 한꺼번에 전시한다. 그러나 신세계 본점은 층별로 테마를 다르게 해 브랜드와 상관없이 속옷은 속옷대로, 청바지는 청바지대로 같은 공간에 모아 놨다.

특정 브랜드가 층마다 코너마다 있다 보니 한편으로는 정돈돼 보이지만 또 한편으론 산만해 보이기도 한다.

입점 업체들은 불만이다. 하나의 상품을 특정 매장에서 사다 보면 다른 상품도 해당 매장에서 구입하는 ‘브랜드 로열티 효과’나 새로운 영역의 제품을 선보일 때 적극 홍보할 수 있는 ‘웨이브 마케팅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층별로 경쟁 브랜드와 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한마디로 대(大)만족이다.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주부 김모(32) 씨는 신세계 강남점을 이용하다가 최근에 강북 본점으로 쇼핑 장소를 바꾸었다. 브랜드가 아니라 상품 위주의 매장 구성이 강남점보다 더 정돈돼 있어 ‘상품 비교’에 편리하다는 이유에서다.

본점 매장 설계를 맡은 총무팀 김의석 과장은 “소비자의 동선을 최소화하는 게 트렌드”라며 “예전에는 고객들을 백화점에 가능한 한 오래 머물게 하는 구매 유도 전략을 펼친 데 비해 최근에는 원하는 상품을 빨리 찾아 구입하도록 하는 게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매장 디자인은 다른 백화점이 벤치마킹하기도 했으며 본점의 매출액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이 백화점 건물 중앙에는 오르고 내리는 에스컬레이터 4개가 모두 몰려 있다. 백화점에 들어서서 6층 골프웨어 매장까지 ‘한눈’ 팔지 않고 한번의 동선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대형 쇼핑몰이 오르거나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의 위치를 떼어 놓거나 같은 상행이라도 층의 좌우측으로 분리해 소비자들이 다른 매장도 방문하게끔 유도하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셈이다.

백화점 부문 마케팅팀 김봉수 부장은 “편집 매장과 중앙집중형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점포가 타 점포에 비해 수익성이 평당 1.3∼1.5배 정도 높다”며 “마케팅 기법은 판매자가 아닌 고객의 시각에서 ‘보이지 않는’ 편리를 찾는 디자인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석강 신세계백화점 부문 대표는 “고객이 알 듯 모를 듯 편안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배려도 인테리어 디자인의 큰 요소”라고 말했다.

○ 쇼핑하러 왔니? 난 쉬러 왔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대형 문, 개별 매장보다 전체 매장을 둘러볼 수 있게 하는 디자인, 쉬지 않고 끊임없이 쇼핑을 유혹하는 동선….

백화점의 매장배치와 공간설계, 인테리어와 관련된 기본 콘셉트들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서울 중구 소공동에 새롭게 문을 연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은 이를 무시했다.

출입문은 속이 들여다보이는 대형 유리문 대신에 좁고 높은 황동색 철제문을 설치했다. 문 주변은 회색 대리석이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쇼핑몰이라기보다 갤러리나 프라이빗 뱅크(특정 고객을 위한 자산관리 은행)에 온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매장 안의 물건을 살피다가 들어오도록 유도하거나,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출입할 수 있는 편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매장의 기본 콘셉트를 왜 무시했을까.

롯데백화점 디자인실 이정해 과장은 “에비뉴엘은 명품 고객의 쇼핑 취향에 맞춰 특화한 쇼핑몰”이라며 “붐비지 않으면서 접근이 편하고 쇼핑객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한 인테리어 구성이 포인트”라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에비뉴엘은 모던과 심플이라는 최근 디자인 트렌드를 무시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강조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했다. 대표적인 콘셉트는 ‘정원과 미술관’(Garden & Gallery) 그리고 ‘휴(休)’. 이에 맞춰 매장 곳곳에서 실내정원이나 예술작품 전시 등에 적지 않은 공간을 할애했다.

고객 휴식 공간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층마다 있는 일반고객 휴게실과 에비뉴엘라운지, 멤버스클럽 등 VIP 전용공간은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인테리어를 맡고 고급 가구와 소품으로 꾸몄다. 쇼핑 도중 이곳에서 충분히 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독서를 하거나 명화(名畵)를 감상할 수 있도록 도서관 시설도 갖췄다. 쇼핑몰이 문화 공간으로도 거듭난 것이다.

에스컬레이터 진출입 공간에도 플라워 장식, 열대어 수족관, 대나무 정원을 배치했다. 에스컬레이터 진출입 공간은 가장 많은 고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백화점에서도 ‘플로어의 캐시카우(cash cow·같은 상품이나 사업으로 계속 수익을 내는 부문)’로 불린다. 대부분의 백화점이 이 공간을 분양하지 않고 특별판매 등 자체 행사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에비뉴엘은 이 ‘금광’을 포기하고 이미지 연출에 더 많은 투자를 했다.

엄청난 예산과 기회 비용을 잠식하는 이러한 공간 디자인이 매출에 영향을 미지치 않을까. 이 질문에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마케팅담당 최영 과장은 간명하게 대답했다.

“다른 쇼핑몰과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쇼핑은 ‘남과 다르고 싶다’는 심리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준비한 차이를 느끼기 시작하면 바로 ‘고객’이 될 것입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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