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지점,소외지역서 철수…부자동네에 늘린다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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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랑구에 사는 주부 김모(31) 씨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A은행에 돈을 넣어둔다. 다른 은행들은 모두 집에서 한참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씨 남편의 급여는 B은행으로 들어온다.

김 씨는 “남편과 같은 은행을 이용하는 게 대출 조건도 좋고 수수료 혜택도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교통비나 은행에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A은행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 지점이 서민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본보가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 신한, 조흥, 한국씨티, SC제일은행의 지역별 지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들 5개 은행의 지점은 1928개에서 2102개로 총 174개 늘어났다. 하지만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일반 도(道) 지역에선 오히려 27개 줄었다.

○ 수도권에만 집중되는 지점들

서울의 은행 지점은 58개 늘었다. 이 가운데 40개가 강남구와 서초구에 몰렸다.

지난해 말 현재 이들 2개 구의 은행 지점은 233개로 서울 전체(1000개)의 23.3%. 2개 구의 인구를 합치면 약 94만 명으로 서울 인구의 9.2%에 그친다.

지점이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충북. 60개에서 43개로 17개 줄었다. 충북의 인구는 149만 명으로 서울 강남 서초구의 1.5배이지만 은행 지점 수는 5분의 1이 안 된다.

같은 서울이라도 구에 따라 차이가 많다. 인구를 지점 수로 나눈 ‘지점당 인구’는 강남 서초구가 각각 3756명과 4514명이지만 강북 강서 관악 도봉 은평 중랑구 등은 2만 명이 넘는다.

경기 지역의 은행 지점도 크게 늘었지만 대부분 서울 부근의 신도시에 집중됐다. 증가한 117개 지점 가운데 용인 성남 수원 고양 안산 화성시 등 6곳에 76개가 몰렸다.

경기 성남시의 은행 지점은 1999년 41개에서 61개로 20개 늘었는데 이 가운데 19개가 분당신도시에 집중됐다. 경기 고양시는 9개 지점이 일산신도시에 생겼고 덕양구에서는 오히려 지점이 1개 줄었다.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을 제외한 5대 광역시에선 은행 지점이 14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 지점 폐쇄는 은행 통합의 영향

은행 지점 수가 해당 지역의 부(富)와 비례하는 현상은 외환위기 이후 은행 통합과정을 거치면서 뚜렷해졌다.

충북은행과 강원은행을 합병한 조흥은행의 지점은 1997년 574개에서 2005년 459개로 115개 줄었다. 중복 지점을 정리하면서 충북과 강원지역의 지점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은행이 우선적으로 소득이 낮은 지역의 지점을 줄이는 ‘지점 폐쇄’ 현상은 미국에서 먼저 나타났다. 1980년대 이후 대형은행들이 지역은행과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해 사회 문제가 됐다.

1995년 케미컬은행과 체이스맨해튼의 합병, 1998년 씨티은행과 트래블러스의 합병이 대표적 사례. 이들 은행은 뉴욕 시의 지점을 크게 줄였는데 대부분 저소득층이 밀집한 브롱크스 지역의 지점이었다.

은행이 통합 후 수익성이 나쁜 지점을 없애는 것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강경훈 연구원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지역의 지점을 폐쇄하는 것이 단기 수익성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수익기반이 되어 줄 고객 확보라는 측면에선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어떤 대책이 있을까

미국 정부는 저소득층 거주 지역의 은행 지점이 없어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1977년 입안됐으나 유명무실하던 지역재투자법(CRA·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크게 강화했다.

CRA란 은행이 지역 서민과 중소기업으로부터 받은 예금의 일정 비율 이상을 이들에게 대출하도록 강제하는 법. 이를 따르지 않으면 지점을 새로 낼 때 제약을 받는다.

국내에서도 CRA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장세진(경제학부) 인하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지역 소형은행이 통폐합됐고 저소득층에 대해 무담보 대출을 꺼리기 시작했다”며 “CRA와 같은 강제 법안은 아니라도 저소득 지역에서 영업하는 금융회사에 혜택을 주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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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김아연 정보검색사 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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