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쇠고기 수입 앞둔 牛시장]소도 웃을 쇠고기값

  • 입력 2006년 1월 25일 04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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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 소 값은 떨어지는데 쇠고기 소매가격은 그대로다. 농가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로 공급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소를 싸게 파는데도 중간상인들이 설 대목을 기다리며 소를 바로 도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지 소시장과 유통 현장을 살펴봤다.》

한겨울 소시장은 푸념으로 가득했다. 소를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이 저마다 “소 값이 떨어져 남는 게 없다”고 했다.

17일 충북 청주시 소시장의 풍경이다. 오전 6시. 이곳 소시장 터줏대감 격인 한재길(韓在吉·50) 씨가 수송아지 2마리를 끌고 장터에 들어섰다.

“형님, 어째 송아지 허리가 많이 짧아 보이네요.”

중간상인 배효천(裵孝天·46) 씨가 흥정을 걸어 왔다. 송아지 골격이 작아 소로 키워봤자 무게가 많이 나갈 것 같지 않다는 뜻이다.

“6개월짜리가 이 정도면 훌륭하지. 사료 값이나 쳐 줘.”

한 씨는 순순히 송아지를 넘겼다. 150kg짜리는 205만 원, 170kg짜리는 213만 원을 받았다.

그는 “작년 10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얘기가 나온 뒤로 송아지 값이 10% 이상 빠졌다”며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려는 축산 농가가 많다”고 전했다. 이날 거세하지 않은 500kg짜리 황소는 350만 원에 거래됐다. 3개월 전에 비해 100만 원가량 떨어진 가격이다.

전남 함평군 소시장에서 거래되는 암소 가격은 거의 폭락 수준이다. 12일 열린 장에서 kg당 9400원에 거래된 소 값이 22일 장에선 8300원까지 떨어졌다. 대목인 설을 목전에 두고도 소 값이 더 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

함평축협에서 소 시세를 관리하는 이용행(李龍行) 씨는 “쇠고기 공급이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점을 이유로 상인들이 소 값을 많이 깎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지방 소규모 소시장에서 거래된 소는 대부분 도축 후 3등급 이하의 ‘저(低)등급 소’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 도축까지 시간 걸려 가격은 ‘제자리’

우울한 牛시장
산지 소 값이 크게 떨어지는데도 쇠고기 값은 내리지 않고 있다. 중간상인들이 설 대목을 노려 출하 시기를 늦추고 있기 때문. 22일 전남 함평군에서 거래된 소 값은 열흘 전에 비해 12% 낮았다. 함평=박영철 기자

그런데도 동네 정육점, 슈퍼마켓, 재래시장, 소규모 음식점에서 파는 3등급 이하 쇠고기 값은 변동이 없다.

저등급 쇠고기의 유통 단계에 이상 기류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소시장에서 소나 송아지를 산 중간상인은 바로 도축하지 않는다. 무게가 600kg 가까이 나갈 때까지 키워 팔려는 것이다. 따라서 소 값이 떨어져도 도축되는 물량이 늘지 않으니 소매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

청주시장에서 소와 송아지를 사들인 배 씨도 도축 시기를 미뤘다. 그는 지금 소와 송아지 50마리를 키우고 있다. 대부분 청주시와 충남 논산시의 소시장에서 매입했다.

“500kg짜리 황소를 소시장에서 350만 원 정도에 산 뒤 600kg까지 살을 찌워 서울 축산물공판장에서 500만 원에 팔려고요.”

이른바 ‘20% 살찌게 한 뒤 파는’ 전략이다. kg당 7000원에 사서 8300원에 파는 셈이다.

이런 전략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린 중간상인이 적지 않다. 소시장에서 싼값에 팔린 소가 도매시장에선 예년 가격 수준으로 거래되는 경우도 있다.

동네 정육점과 슈퍼마켓, 음식점 등 소매 단계에서는 변수가 더 많다. 운송비, 뼈 제거 비용, 가게 운영비, 고객 관리비 등 판매가를 결정할 때 감안해야 할 비용이 다른 유통 단계보다 복잡하다.

○ 산지 소 값 10∼20%까지 하락

설 이후 쇠고기 수요가 줄면 소매가격도 저등급 쇠고기 위주로 하락할 전망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는 4월 이후에는 고급으로 분류되는 1, 2등급 쇠고기 값도 떨어질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 한 해 한우 수소의 산지 평균가격이 330만 원 선으로 지난해보다 14%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민국(鄭敏國)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10월 이후 산지 소 값은 이미 10∼20% 떨어졌다”며 “설 이후 농민들이 한꺼번에 출하하면 가격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우 값은 수입 물량보다 국내 출하 물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한우 출하 물량이 특정 시기에 몰리면 산지 가격은 300만 원대 초반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소를 사들인 뒤 살을 찌워 팔려는 중간상인들이 소를 대거 도축하기 시작하면 공급 초과 양상이 오랜 기간 이어질 수도 있다.

농림부는 올해 국내 쇠고기 생산량이 지난해에 비해 11% 증가한 16만8000t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입산 쇠고기 물량은 지난해보다 42% 늘어난 20만3000t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한우 산지 가격은 2007년까지 하락하고, 2008년 이후에나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농촌경제연구원의 예상이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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