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또 다른 개성 표현 외제 중고차

  • 입력 2006년 1월 2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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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부품을 수입 판매하는 강윤병(46) 씨는 ‘지프 랭글러’ 마니아다.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지프 랭글러를 1997년 처음 구입한 뒤 지난해 같은 브랜드의 다른 차로 바꿨다.

강 씨의 랭글러 사랑은 취미와 맞물려 있다. 그는 틈날 때마다 산골짜기의 비포장도로 드라이브를 즐긴다. 랭글러는 어린 시절에 봤던 이른바 ‘찝차’의 추억을 고스란히 전해 주는 차다. 그는 “전통적인 지프의 투박하고 단순한 맛에 매료돼 다른 차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강 씨는 랭글러를 새 차로 구입한 적이 없다. 1997년과 지난해 모두 중고차를 구입했다. 그는 “중고차를 선택한 이유는 국산 신차 비용으로 꿈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며 “국산 신차의 몇 배씩 하는 외제 신차의 가격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외제 중고차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외제차는 지난해 3%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6%로 성장할 전망이다. 신차에 뒤떨어지지 않는 애프터 서비스, 할부나 리스 등 다양한 판매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선 덕분이다. 특히 다음 달(2월)은 봄을 앞두고 차량 교체가 많은 시기다. 휴가 시즌인 7∼8월, 연말인 12월과 더불어 3대 대목으로 꼽힌다. 외제 중고차의 장점은 남들과 구별되는 차를 가지고 싶은 욕망과 주머니 사정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외제 중고차 매장을 들여다봤다.》

○ “신차 매장이야, 중고차 매장이야?”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일대. 중고차 매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야외에 차만 빽빽이 진열한 곳이 대부분이지만 색다른 한 곳이 눈에 띄었다. 매장 인테리어도 깔끔한 데다 직원들이 모두 ‘크라이슬러’ 로고가 찍힌 유니폼을 입고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중고차 매장이다. 외제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중고차 매장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100여 평의 실내에는 크로스파이어나 그랜드체로키 등 크라이슬러의 주력 상품이 전시돼 있었다. 매장 옆에는 직영 자동차 검사장도 있다. 입구에 ‘Used Car(중고차)’라는 팻말이 없었다면 신차 매장으로 착각할 정도다.

엄흥종(60) 씨는 3500만∼4000만 원의 예산을 갖고 중대형 세단을 둘러보기 위해 들렀다. 그는 “외제 중고차를 검토하던 중 주위의 권유를 듣고 찾아왔다”며 “신차 매장과 다름없는 깔끔한 서비스에 마음이 끌린다”고 말했다.

이곳 중고차매장은 별다른 홍보 마케팅이 없었음에도 최근 고객이 부쩍 늘었다. 이전까지 한 달 평균 10대 정도 팔렸지만 지난해 7, 8월부터 평균 20대로 늘었다.

이 회사의 중고차사업본부 이용희 부장은 “‘직영점이어서 신뢰가 간다’고 말하는 고객들이 많다”며 “판매가 늘어난다는 소문에 BMW 벤츠 아우디 렉서스 등 빅 4 메이커 관계자들도 이곳을 둘러보고 갔다”고 말했다.

외제 중고차를 판매하는 국내 업체에도 고객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서울오토갤러리는 2003년 한 달 평균 600대에서 지난해 800대로 매출이 늘었다.

외제중고차의 인기는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 인터넷 중고차 거래업체인 SK엔카 네트워크의 외제차 판매는 2003년 610대에서 2004년 905대, 지난해에는 1169대로 늘었다. 등록대수도 2003년 8788대에서 지난해 1만8058대로 증가했다.

서울오토갤러리의 장영수 기획부장은 “외제 중고차 시장이 ‘대포차(등록하지 않은 차량)’ 이미지를 걷어내고 리스 등 다양한 구매 방법과 투명한 유통 경로를 제시하면서 소비자에게 성큼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 “엇비슷한 신차보다 개성 살린 중고차가 좋다”

외제 중고차 매장들이 다양한 구매 방식과 이미지 제고로 소비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는 다임러크라이슬러 코리아의 중고차 매장. 수입 브랜드가 직영하는 중고차 매장으로 인테리어나 서비스가 신차 매장 못지않다.

머서 컨설팅의 우성민(30) 컨설턴트는 2004년 BMW 325 중고차를 약 4000만 원에 구입했다. 신차 가격은 5600만 원 정도. 4000만 원이면 국산 대형차를 살 수 있지만 우 씨는 “내 나이에 맞는 이미지의 차라는 점에서 선택했다”고 말했다.

외제 중고차들의 ‘관리’도 우 씨의 선택을 끌어당긴 변수. 고급차라는 인식에 원주인도 세심하게 관리하고 유통업자들도 조심해서 다룬다는 것이다. 우 씨는 신차에 비해 큰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외제 중고차가 싸다는 이유 외에 또다른 변수가 있다. 우 씨는 2002년 2000년식 사브93 컨버터블을 2800만 원에 구입해 사용했다. 2004년에 다시 팔았는데 2500만 원을 받았다.

우 씨는 “외제 중고차는 관리 상태도 좋지만 매매할 때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근섭(55·개인사업) 씨는 카누와 보트가 취미다. 국산 차는 별도 장치를 부착하지 않으면 카누와 보트를 실은 트레일러를 끌 수 없다. 심 씨는 국산차를 개조해 사용하다가 만족하지 못해 지난해 7월 3500만 원에 중고 크라이슬러 다코타를 샀다. 심 씨는 “국산 레저용 차량(RV) 신차도 고려했지만 국산차는 엇비슷한 차종만 생산해 선택의 폭이 넓지 못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자동차 소비자 수준이 이미 세계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률적인 자동차에 만족하지 않고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자동차를 원한다는 것이다. 외제 중고차 전문점 유로모터스의 김용수 대표는 “과거 외제차의 고객은 40대 이상이었으나 이제는 20, 30대가 더 많다”며 “외제차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사라지면서 차를 통해 개성을 표현하려는 심리가 보편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통한 개성 표출은 외제 중고차 튜닝 및 인테리어 시장의 성장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한국자동차튜닝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튜닝 및 인테리어 시장은 약 1조 원 규모로 이 중 30%를 외제 중고차가 차지하고 있다.

튜닝업체인 소닉모터스의 이제환 대리는 “20, 30대가 주 고객으로 차를 편의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옷이나 액세서리처럼 자신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여긴다”며 “외제 중고차를 사는 이들도 자신의 멋과 개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튜닝을 의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촬영 협조 레프리카

■ 중고차 고르는 요령…부품공급 원활한지 살펴야

차에 대해 안다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의 ‘중고차 구입’에는 나서지 않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중고 자동차에 대한 관리가 잘되고 있으나 ‘중고차는 잘못 샀다가 덤터기 쓰기 십상’이란 이미지가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몇 가지만 유의하면 다양한 가격의 상품을 고를 수 있다고 충고했다.

먼저 무사고 차량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무사고 여부를 식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엔진룸을 열어 양쪽 바퀴가 있는 부분 바로 위에 있는 완충장치 뚜껑 주위의 용접 상태와 찌그러진 흔적을 확인한다. 라디에이터가 터진 정도면 안전에 큰 문제가 없지만 완충장치가 있는 부분이 찌그러졌다면 피하는 게 좋다.

엔카네트워크의 한지영 수입차본부실장은 “외제중고차는 ‘중고차 성능점검고지서’를 발급받아 확인하고 점검 전문업체에 확인 진단을 받는 게 좋다”며 “보험개발원의 보험 사고 이력조회 서비스(www.carhistory.org)를 통해 수리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차체의 꽁무니도 체크해야 한다. 트렁크도 꼭 열어보자. 스페어타이어를 꺼낸 뒤 트렁크 바닥 전체도 살펴봐 찌그러진 부분이 있다면 사고 차량일 가능성이 높다.

엔진은 통념과 달리 비교적 확인이 수월한 부분. 시동을 건 뒤 가속 페달을 밟아 잡소리가 안 나면 안심할 만하다. 그래도 의심이 가면 점화플러그를 빼 보아 뽀얀 상태면 합격이다.

하체 상태도 중요하다. 반드시 경정비소에서 리프트로 하체를 들어보는 것을 권한다. 바퀴나 조향장치 등을 붙들고 있는 고무 부싱은 소모품으로 오래되면 느슨해지고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 오일이나 부동액이 새면 절대 선택하지 말 것. 특히 자동변속기 차량은 오일이 새면 계속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높다.

외제차는 유통 경로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내 공식 수입업자를 통해 정식 출고된 차인지, 병행 수입업자를 통해 해외에서 직수입한 차(그레이 차)인지 확인해야 한다. 가격은 그레이 차가 정식 출고된 차보다 싸지만 아무래도 정식 출고가 믿을 만하다.

외제 중고차를 선택할 때는 부품이 원활하게 공급되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실제로 기자의 친구는 시중가보다 훨씬 싼 가격(3000만 원)에 외제 스포츠카를 샀으나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고장난 브레이크 시스템을 고치는 데 800만 원을 들였다.

전 창 기자·전 카레이서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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