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기업 空기업]<上>성과급 ‘돈잔치’

  • 입력 2005년 10월 26일 03시 06분


코멘트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감독해야 할 정부마저 경영 실적을 넘어서는 성과급 지급을 묵인해 방만한 경영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는다. ‘주인 없는’ 회사라는 구조적 한계와 함께 현 정부 들어 공기업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문제가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실태를 들여다보고 개선 방안을 찾는 시리즈를 2회 게재한다.》

13개 정부투자기관의 성과급 지급 실태를 분석해 보면 경기불황으로 경제 주체들이 어려운 가운데도 공기업들은 ‘돈 잔치’를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도 성과급 지급기준을 바꿈으로써 결과적으로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조장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 얼마나 더 받았나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13개 정부투자기관 중 한국전력공사는 성과급 산정 방식 변경의 최대 수혜자였다.

한전은 성과급제 도입 첫해인 2002년 80.72점의 경영평가점수를 받아 직원 1인당 평균 692만 원(346%, 직원은 월 기본급 기준)의 성과급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2002년보다 낮은 80.51점을 받고도 13개 기관 중 최고점이라는 이유로 평균 1000만 원(500%)의 성과급을 챙겼다.

2002년 기준이라면 688만 원(344%)만 받아야 하지만 산식(算式) 변경으로 총 630억 원을 더 받았다.

KOTRA도 2002년보다 경영평가점수가 떨어졌지만 성과급은 오히려 늘었다. 2002년 81.23점으로 1인당 평균 350%(700만 원)의 성과급을 받았으나, 2004년에는 79.69점을 받고도 480%(960만 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2002년 기준을 적용하면 지난해에는 338%(676만 원)를 받았어야 했다.

농업기반공사는 2002년 75.81점을 받아 1인당 평균 306%(612만 원)의 성과급을 받았으나, 지난해에는 이보다 낮은 73.77점을 받고도 338%(676만 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2002년 기준대로라면 290%(580만 원)에 불과해 총 57억 원의 성과급을 더 챙긴 셈이다.

대한주택공사도 2002년 80.74점을 받아 346%(692만 원)을 받았으나, 지난해에 역시 이보다 6.24점이 낮은 74.5점을 받고도 2002년보다 많은 355%(710만 원)를 받아갔다.

○ 사장부터 직원까지 성과급 늘어

건설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대한주택공사 한국토지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의 지난해 말 기준 총 부채는 45조 원, 평균 부채비율은 132%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해 총 258억 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4개 공기업 사장들의 성과급은 2002년 평균 5604만 원(기본급의 87.3%, 사장과 임원은 연 기본급 기준)에서 지난해 1억269만 원(143.5%)으로 두 배로 늘었다.

주공 사장은 2002년 연 기본급의 96%인 6038만 원의 성과급을 받았으나, 2003년 6134만 원(92%), 2004년에는 192%를 적용받아 1억3462만 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주공 사장은 지난해 기본급을 포함해 2억1163만 원을 받았다. 토공 사장은 2002년 30%의 성과급으로 1890만 원을 받았지만, 2004년 148%인 1억377만 원의 성과급을 받는 ‘대박’을 터뜨렸다.

일반 직원들도 마찬가지.

수자원공사 직원은 2002년 1인당 평균 528만 원(320%)의 성과급을 받았지만 2004년에는 930만 원(423%)을 받았다. 연봉은 평균 4033만 원에서 5172만 원으로 불었다.

토공 직원도 2002년에는 1인당 평균 444만 원(268%)을 받았으나, 2004년에는 900만 원(396%)을 받아 평균 연봉이 3795만 원에서 4800만 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국고로 환수되는 주주 배당 실적은 미미했다. 이들 4대 기관의 지난해 평균 주주 배당률은 0.34%로 지난해 상장 기업 평균 2.71%의 12%에 불과했다.

○ 왜 이런 일이

정부는 경쟁 체제를 도입해 임직원들의 근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성과급 산정 방식을 바꿨다고 밝혔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산식을 바꾼 결과 지난해 정부투자기관 사이에 최대 200%포인트의 성과급 차이가 발생했다”며 “절대 평가를 기준으로 했던 2002, 2003년의 산식대로라면 기관 간 차이가 100%포인트 이상 벌어지지 않아 성과급제 도입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토공 관계자도 “민간 기업과 비교해 기본급 인상 폭이 적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 성과급 분야에서 민간 부문과 나름의 형평성을 맞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획예산처의 해명과 달리 성과급 총액은 늘어났고, 2002년과 비교해 지난해 성과급이 줄어든 곳은 3곳에 불과했다.

연세대 김정식(金正湜·경제학) 교수는 “정부투자기관 대부분이 노조의 압력에 밀려 성과급을 인상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인정하고 있다”며 “타성이 돼 버린 도덕적 해이를 고치려면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낙하산’ 앉을 자리 미리 닦는다?▼

정부는 왜 정부투자기관의 성과급 지급 방식을 바꿔 결과적으로 성과급을 더 지급하게 했나?

이에 대해 정부는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공기업 주변에서는 공무원들의 ‘회전문 인사’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혹도 적잖다. 고위 공무원들이 퇴직 후 정부 부처 산하 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상황을 고려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현재 정부투자기관을 포함해 15개 정부 산하 및 유관 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고위 임원 중 공무원 출신은 82명.

기관별로는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이 18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행정자치부(17명) 건설교통부(11명) 순이었다.

박재영(朴宰永) 전 해양부 차관보는 2003년 12월부터 한국해양오염방제조합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고, 추준석(秋俊錫) 전 중소기업청장은 부산항만공사 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행자부는 정채융(丁采隆) 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이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건교부 산하 기관 중에는 손학래(孫鶴來) 전 철도청장이 한국도로공사 사장으로 재직 중인 게 대표적이다.

한국방송통신대 윤태범(尹泰範·행정학) 교수는 “공무원 출신 공기업 임원 중 일부는 공모를 거쳤거나 전문성을 인정받았겠지만 이런 ‘도돌이표 인사’로는 결코 공공성 강화와 경영 효율성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투자기관과 공기업:

정부투자기관은 보통 공기업으로 통칭되는 공공기관 중 정부의 납입 자본금이 50% 이상으로 운영되는 기관을 뜻한다. 한국전력공사 등 대규모 공사가 해당된다. 공기업은 정부투자기관을 포함해 정부출자기관(정부 납입금이 50% 미만인 곳), 정부재투자기관, 정부출연기관 등을 통칭한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