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수매 폐지 첫해 쌀값하락 현실로…

  • 입력 2005년 9월 1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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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곡수매제가 폐지된 첫해. 농민들은 풍년의 기쁨보다 쌀 가격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14일 경기 평택시 안중읍에서 조충묵 씨가 전날 내린 비로 쓰러진 벼를 세운 뒤 근심어린 표정으로 논을 바라보고 있다. 평택=전영한  기자
추곡수매제가 폐지된 첫해. 농민들은 풍년의 기쁨보다 쌀 가격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14일 경기 평택시 안중읍에서 조충묵 씨가 전날 내린 비로 쓰러진 벼를 세운 뒤 근심어린 표정으로 논을 바라보고 있다. 평택=전영한 기자
《14일 오후 경기 평택시 안중읍 농협 미곡종합처리장. 꼬챙이로 쌀가마를 쿡쿡 찌르던 금곡2리 이장 조충묵(趙忠默·54) 씨가 입을 열었다. “추석이 내일모렌데 쌀값은 왜 이 모양이여?” “쌀이 남는다잖아요. 추석 전 소량 수확하는 햅쌀 가격이 이러니 추석 뒤 대량 수확하는 쌀은 볼 장 다 봤구먼.” 농협 곽정근(郭正根·48) 상무의 분석이 이어졌다. 추곡수매제가 폐지된 첫해 농민의 ‘풍년 시름’이 깊다. 쌀 생산량이 넘쳐 값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 지난해까지 농민들은 정부가 연초에 정한 가격에 따라 수확 전인 5, 6월 선금(약정가의 60% 선)을 받고 수확 후 잔금을 받았다. 그래서 시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산지 쌀값이 소득에 직접 영향을 준다.》

○ 경기도 벼 값 작년보다 17% 하락

평택시 안중농협에 따르면 현재 쌀 수집상들이 햇벼(조생종)를 사는 가격은 1등급 기준 40kg에 4만8000원. 지난해 5만8000원에 비해 17% 떨어졌다.

이런 값에도 벼를 다 팔기 힘들다. 햅쌀을 찾는 사람이 적기 때문. 수집상들이 앞 다퉈 논에 있는 벼를 통째로 사가던 지난해와는 전혀 딴판이다. 금곡2리 조 이장과 농협 곽 상무에게서 쌀값 전망을 들은 안중읍 토박이 농사꾼 이병산(李炳山·68) 씨의 얼굴빛이 변했다. 이 씨는 올해 논 7000평에 조생종은 전혀 심지 않고 추석 후 벼를 베는 중·만생종(성장이 늦은 품종)만 심었다.

햇벼(1등급 40kg 기준) 산지 가격
구분2004년2005년
경기5만8000원4만8000원
전남5만1000원4만7000원
전북4만7000원5만7000원
경남5만5000원5만 원
충남5만4000원5만 원
산지 가격은 평균치. 실제 가격은 세부 지역과 품종에 따라 다를 수 있음. 자료:각 지역 농협

이 씨는 “연초 수확물량을 농협에 팔기로 계약하지 않아 혼자 힘으로 벼를 말리고 찧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이 논 10마지기(2000평) 분량의 벼를 건조하는 데 드는 비용은 17만 원. 농협 대형 기계를 이용할 때보다 4만 원이 더 든다. 또 개인이 정미소에서 쌀 한 가마를 도정하면 1만 원 정도 들지만 정부나 농협은 이 작업을 공짜로 해준다.

추곡수매제가 폐지된 데다 농협과 수매계약을 할 수 있는 물량이 제한된 탓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난 것. 안중읍 농가는 추곡수매제를 폐지하는 대신 도입된 쌀 소득보전 직불금을 대부분 신청했다. 직불제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데 주민들이 동의한 셈.

김갑수(金甲洙·72) 씨는 그래도 불만이다. 추곡수매 때처럼 선금을 못 받으니 비료 값 대기도 쉽지 않다는 것.

“추석이면 손자에게 용돈도 줘야 하는데 올해는 어렵겠어.”

○ 다른 지역 쌀값도 하락세

다른 지방의 햇벼 가격도 많이 떨어졌다.

충남 당진군 신평농협은 햇벼 거래가격이 40kg당 평균 5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4000원(7%) 안팎 하락했다. 지난해 재고가 많은 데다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비싼 햅쌀을 찾지 않기 때문.

전북의 햇벼 가격은 지난해보다 18%, 전남은 8% 하락했다.

전남 금성농협 최성렬(崔成烈) 양곡팀장은 “기온이 높아지면서 수확시기가 빠른 햇벼를 재배하는 지역이 많아져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의 햇벼 가격은 지난해 5만5000원에서 올해 5만 원으로 떨어졌다.

○ 정부 직불금 부담 커질 수도

농민들은 쌀값 하락을 우려하지만 농림부는 “너무 앞서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아직 중·만생종 쌀을 수확하기까지 보름 남짓 남은 만큼 그사이 태풍이 불거나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작황이 나빠지면 가격이 폭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농림부 생각.

정부는 올해 쌀값이 작년보다 5% 떨어질 것으로 보고 쌀 소득보전 직불금 8549억 원을 편성해 뒀다. 직불금은 산지 쌀값과 올해 목표가격(80kg에 17만70원) 간 차액의 85%를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 쌀값이 예상보다 많이 떨어지면 직불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농림부 김영만(金永晩·48) 식량정책국장은 “10월 초 쌀값이 급락하면 공공비축물량을 400만 섬 이상으로 늘리는 등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평택=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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