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高유가 시름]기름도둑 판치고… 어선 발묶이고

  • 입력 2005년 9월 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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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프트럭 운전사인 안모(47·광주 서구 금호동) 씨는 지난달 24일 황당한 일을 당했다. 누군가 집 앞 도로에 세워둔 덤프트럭 주유구를 열고 약 30만 원어치의 경유를 훔쳐 갔기 때문. 안 씨는 “다른 동료 운전사도 최근 공단 인근 도로에 트럭을 주차시켰다가 기름을 도난당했다”고 말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기름 값 때문에 기름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유사 휘발유와 경유 불법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면세유 값 폭등으로 어민들은 출어를 포기하고 기업은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유사 휘발유 구입 증가=경찰청은 7월 18일부터 한 달간 유사 휘발유와 경유 제조 및 유통 행위에 대한 특별 단속을 벌여 1220명을 적발해 31명을 구속하고 유류 53만6000L를 압수했다고 1일 밝혔다.

지난달 13일에는 유사 휘발유 450만 L(시가 45억 원 상당)를 제조해 유통시킨 일당 30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은 “유사 휘발유가 정상 제품의 3분의 2 가격인 L당 1000원 안팎에 판매돼 고유가로 고민하는 운전자를 유혹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가의 54%(고유황 경유 기준) 정도에 공급되는 면세유를 쓰는 어민들은 1년 사이에 기름 값이 20% 이상 올라 조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조업비용 중 유류 가격이 절반을 차지하는 원양어선은 80% 정도가 출어를 포기했다. 모 원양사는 올해 들어 어선 3척에 대해 휴업신고를 냈다.

여수수산인협회 박강호(朴康浩·72) 전무이사는 “9월부터 12월까지가 성어기인데 기름 값이 너무 올라 조업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어민들 스스로 휴어 기간을 정하는 등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합천군 가회면에서 버섯 농사를 짓는 배몽희(40) 씨는 “벼 수확과 시설하우스 난방용 기름 소비가 많아지면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군경과 기업도 비상=불법 조업 중인 중국어선 단속과 테러 관련 해상 순찰 활동을 강화한 해양경찰청은 경비함에 싣고 다니는 페인트와 부속품 등 장비 무게를 최대한 줄였다.

제주해경의 경우 해상 경비업무 교대 시 들어가는 유류를 절약하기 위해 출동 기간을 기존 5박 6일에서 8박 9일로 늘렸다.

해군은 경비 업무 외에 함정 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목포해역방어사령부 관계자는 “예전에는 바다에서 사격 훈련을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출동했으나 요즘에는 경비 업무를 마치고 귀대하는 도중에 사격 훈련을 한다”고 말했다.

섬유 전자 업종이 밀집한 경북 구미공단 업체들도 마찬가지. LG필립스디스플레이는 공조기를 8대에서 5대로 통합 운영하고 브라운관 공정을 삭제하거나 세척 방법을 바꿔 전력을 절감하고 있다.

㈜코오롱은 올해 안으로 24억 원을 들여 낮은 가격의 심야 전력을 이용해 원사 열을 식히는 냉수를 만들어 저장했다가 낮 시간대에 사용하는 ‘수축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대우전자 구미공장은 협력업체를 포함해 150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승용차 대신 자전거 타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유류비가 총비용의 25%를 넘는 항공사는 기내에 배치하는 잡지의 부수도 줄일 정도이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부산=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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