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에 재정지출 늘려도 내수침체 여전

  • 입력 2005년 5월 1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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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정책에 재정지출까지 확대했는데도 왜 내수는 꿈쩍하지 않는가.” 금리가 낮아지면 금리 부담이 줄어 투자와 소비가 늘고 경제 활력이 높아진다고 경제학 교과서는 쓰고 있다. 또 재정지출을 늘리면 투자가 늘고 고용이 증가하는 게 경제상식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경제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재정지출을 늘려도 좀처럼 내수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 금리 아무리 낮아도 소비 안 살아

정부와 한국은행은 저금리 기조 유지가 경기회복의 중요한 필요조건이라고 본다.

한덕수(韓悳洙)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6일 재경부 간부회의에서 “부동산 투기가 재연돼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한국경제는 상당한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

하지만 한은이 2001년 2월부터 지금까지 콜금리 목표를 8차례나 낮췄지만 소비와 투자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민간소비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인 소매업 판매는 2003년 1분기(1∼3월)부터 작년 4분기(10∼12월)까지 8분기 동안 하락세였다. 올 1분기에 간신히 플러스로 돌아섰지만 증가율은 1.2%(전년 동기 대비)로 미약한 수준.

설비투자 역시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설비투자 추계는 지난해 1.4% 증가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4.3% 증가에 머물렀다.

저금리 상황이 소비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를 우선 꼽는다. 소비자들이 빚을 갚느라 허덕이는 상황에서 금리를 낮춰봐야 소비가 늘어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세금 등 비(非)소비성 지출 증가와 여윳돈이 줄어든 것도 소비회복 지연의 원인이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비소비성 지출은 지난해 월평균 39만700원으로 전년에 비해 13.5% 증가했다. 반면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지난해 237만3800원으로 전년에 비해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경제성장률(4.6%)에도 훨씬 못 미친다.

또 저금리로 금리 부담이 줄어드는 사람들 못지않게 이자소득 감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재정지출 확대해도 민간투자 유발 안돼

정부는 저금리정책과 함께 재정지출을 늘려 조기에 집행하는 정책을 써왔지만 이 역시 민간투자를 부추기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3개월 정도 후의 설비투자 상황을 보여주는 국내기계수주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로 볼 때 △지난해 12월 ―9.9% △올해 1월 0.8% △2월 ―18.8% △3월 ―3.3%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건설투자도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저금리나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기업의 투자심리를 자극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은 김재천(金在天) 조사국장은 “재정지출 확대가 기대한 만큼 민간부문 지출을 촉진하지 못하는 것은 민간부문이 경기회복을 확신하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申민榮) 연구위원은 “기업 투자가 저조한 것은 국제경쟁이 격화되고 투자수익을 낼 확률은 낮아졌기 때문”이라며 “저금리와 재정지출로 기업의 투자를 부추기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단기 부양정책에 대한 회의론

이에 따라 저금리와 재정지출 확대 등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을 수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시중자금이 부동산시장 주변을 맴돌면서 집값을 자극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朴宗奎) 연구위원은 “금리를 인상한다고 바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은이 금리를 경기진작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인식을 시장에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어느 정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정정책보다는 세금인하가 경기부양에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씨티은행 오석태(吳碩泰) 이코노미스트는 “종합투자계획과 같은 거창한 사업은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효과도 의문”이라며 “감세정책을 통해 국민이 쓸 돈을 늘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 경기진작책과 함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는 등 장기 성장잠재력을 회복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서강대 곽태원(郭泰元·경제학) 교수는 “현재의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경기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라며 “소비자와 기업하는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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