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펀드 ‘훈수 넘어 횡포’…전경련, M&A방어대책 요구

  • 입력 2005년 3월 21일 1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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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차익을 찾아 움직이는 외국계 사모(私募)펀드들이 한국 기업에 대해 지나친 경영간섭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회사 경영진을 바꾸겠다는 목소리가 커지는가 하면, 기업 인수합병(M&A)을 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주가를 올렸다가 시세차익을 빼먹고 빠지는 사례도 지적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1일 내놓은 ‘주주행동주의의 국내외 비교와 정책시사점’이란 분석자료를 통해 외국계 펀드의 문제점을 상세히 지적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영권 위협=영국계 펀드인 헤르메스는 2004년 3월 삼성물산 지분 5%(777만2000주)를 산 뒤 금융감독원에 ‘단순투자 목적’이라고 신고했다.

헤르메스는 같은 해 12월 1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 형식을 통해 “경영진이 지배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M&A를 시도하는 펀드를 지원하겠다”고 ‘협박’한 뒤 인터뷰 직후인 12월 3일 삼성물산 주식 5%를 모두 팔아치웠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은 헤르메스가 주가조작을 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 출장을 다녀왔다.

모나코에 본사를 둔 뉴질랜드계 소버린펀드는 2003년 3월에 SK㈜ 주식 1900만 주를 사들였다.

소버린펀드는 같은 해 11월 SK㈜ 경영진의 사퇴를 요구하고 사내외 이사 5명을 추천하기도 했다. SK㈜는 경영권 방어에 보유현금을 쏟아 붓느라 다른 투자에는 별 신경을 쓰지 못했다.

증권가에선 소버린펀드가 얻게 되는 평가차액만도 투입금액의 약 6배인 9000억 원 정도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부당한 경영간섭=SK텔레콤은 2002년 차세대 이동통신사업 투자를 위해 30%의 유상증자를 통해 4000억 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계획했다. 하지만 배당 감소와 주가 하락을 이유로 타이거펀드에서 반대하자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경영진이 내린 투자결정에 반기(反旗)를 든 것.

또 삼성전자는 캐피털그룹 등으로부터 사외이사 추천권과 본사의 해외이전을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점을 이용해 외환은행이 주채권은행인 동아건설의 부실채권 인수입찰에 참가하려고 시도했다가 불공정시비가 일자 입찰을 포기한 적도 있다.

▽고율배당 요구=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1999년 서울증권을 인수한 후 2002년 액면가의 60%의 고율 배당을 했다.

호주계 파마펀드가 대주주인 메리츠증권은 2003년에 순이익이 3억 원이었지만 배당금은 순이익의 15배가 넘는 50억 원을 줬다. SK㈜는 2003년에 순이익의 6배가 넘는 961억 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사모펀드의 배당압력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경상(李京相)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외국계 사모펀드의 이 같은 횡포에 대한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투기자본과 기업사냥꾼의 공격으로 기업들이 몸살을 앓았던 1980년대 미국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이날 ‘국내 M&A 관련제도 실태’ 보고서를 내고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 기간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선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다시 도입하고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등 정부당국이 M&A 방어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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