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해신’ 제작 산파역 김재철 무협회장

  • 입력 2005년 3월 20일 1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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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 뒤집어 보니…“한국인의 미래는 바다와 세계에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집무실에서 만난 김재철 한국무역협회장은 남북이 뒤바뀐 세계지도를 가리키며 “한국의 젊은이들이 해상왕 장보고와 같은 과감한 개척정신을 갖고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주훈 기자
세계지도 뒤집어 보니…
“한국인의 미래는 바다와 세계에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집무실에서 만난 김재철 한국무역협회장은 남북이 뒤바뀐 세계지도를 가리키며 “한국의 젊은이들이 해상왕 장보고와 같은 과감한 개척정신을 갖고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주훈 기자
《“일찍이 9세기에 바다로 뻗어나가며 ‘세계화’를 실천한 사람이 해상왕 장보고입니다. 그가 청해진을 중심으로 만들었던 네트워크는 ‘한국 제1호 종합무역상사’였죠. 가까이는 당나라와 일본, 멀리 아라비아까지 3각 무역을 하며 한국을 ‘동북아 물류의 중심지’로 만들었던 장보고야말로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향해야 할 모습입니다.”

최근 KBS의 드라마 ‘해신(海神)’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것을 지켜보는 김재철(金在哲·70) 한국무역협회장 겸 동원그룹 회장의 마음은 뿌듯하다.

장보고를 역사책 밖으로 끌어내 우리 민족의 영웅으로 부각시키는 데 ‘산파’ 역할을 적잖이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보고에 대한 김 회장의 관심은 부산수산대를 졸업한 뒤 한국 최초의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타고 대양을 항해하던 1950년대 후반에 이미 싹텄다. 》

KBS드라마 해신의 한 장면

고희(古稀)의 나이에도 한 달에 30∼40권씩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김 회장은 남태평양에서 원양어선의 선장으로 일하며 밤마다 문학, 역사책을 섭렵했다. 많은 책 중에서도 ‘20대 선장’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빨아들였던 책은 세계적 역사학자인 라이샤워 씨가 영어로 번역해 출간한 일본 승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당나라로 들어간 엔닌은 장보고가 산둥반도에 세운 사찰 ‘법화원’에서 보호를 받으며 불법을 공부했습니다. 이 책에는 장보고의 인덕(仁德)과 영웅적 풍모에 대해 존경심을 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라이샤워 씨는 이 얘기를 기초로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발달한 문명권 동아시아를 주름잡았던 장보고를 ‘해상 무역왕’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장보고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이후 세계 최대의 참치잡이 선단을 보유한 대기업을 키워 내는 과정에서 김 회장의 마음 한쪽에는 항상 장보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장보고와 직접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 학계 및 해양업계 관계자로 구성된 ‘해상왕 장보고 재조명 평가사업 추진위원회’의 위원장과 1999년 세워진 ‘해상왕 장보고 기념사업회’의 재단이사장을 맡으면서부터. 또 1999년에 무역협회장에 취임해서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건물 앞에 장보고 기념조형물부터 세웠다.

드라마 해신의 제작 과정에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얽힌 에피소드도 숨겨져 있다. 1999년 말 해양수산부 장관과 함께 청와대를 찾은 김 회장은 장보고 사업의 중요성을 대통령에게 역설했다. 이 얘기를 들은 김 대통령은 “요즘 드라마 ‘왕건’으로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장보고도 드라마로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김 회장은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만큼 먼저 역사에 충실한 소설을 만들고 이것을 토대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답했다.

곧바로 소설가 섭외가 시작됐다. 국내 최고의 작가 여러 명과 논의한 끝에 최인호 씨가 책을 쓰기로 하고 해상왕 장보고연구회의 학자 80여 명이 장보고와 관련된 사료를 찾아내는 데 투입됐다.

최인호의 소설 ‘해신’은 2001년 한 종합일간지에 연재되기 시작해 2003년 1월에 책으로 묶어져 나왔다. 또 2003년에는 KBS의 신년스페셜 다큐멘터리 ‘해신’이 제작돼 5회에 걸쳐 방송되기 시작했으며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12∼1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드라마 제작이 결정됐고 지난해 11월 방영되기 시작했다.

“해신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한국 ‘해양사(海洋史)’의 대표적 인물은 이순신 장군과 장보고입니다. 둘은 모두 영웅이지만 이순신 장군이 외국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한 해전(海戰)의 영웅이라면 장보고 대사는 해양 개척의 영웅입니다. 1200여 년 전에 한중일 3국의 경제협력체제를 구축했던 장보고의 꿈을 오늘날 ‘동북아 경제 중심지’를 만듦으로서 되살려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 김 회장은 한국 사회를 지켜보며 고민이 많다고 했다. “한국인은 우수한 두뇌나 부지런함 등 잠재력이 너무나 훌륭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말만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회가 혼선에 빠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왕정시대, 일제강점기, 군사정권 등을 거치면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용기’라는 생각이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세계적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산을 옮기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트랙터’라고 했습니다. 지금처럼 민주주의가 확립된 상황에서도 남 잘못했다고 비판만 하는 것을 용기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이제는 실천하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으로 평가돼야 합니다.”

삼성동 무역협회 빌딩에 있는 김 회장의 집무실 벽에는 남과 북이 뒤바뀐 대형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10여 년 전 호주를 방문했을 때 이 특이한 지도를 발견한 김 회장이 한국에 가져와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우주에서 위와 아래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북쪽이 위로 돼 있는 지도에서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 붙어 있는 부속물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남북을 바꿔서 보면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넓은 대양을 향해 우뚝 선 모습입니다. 이제는 발상을 바꿔 바다로,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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