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우량고객 우대 디마케팅 강화

  • 입력 2005년 1월 4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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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일부 영업점은 최근 대기번호표를 없앴다. 번호표를 뽑으려다 머쓱해진 고객들은 한 줄로 서서 기다리다 차례가 되면 업무를 본다. 번호표가 있을 때는 대기석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지만 이제 그런 ‘호강’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

수익에 도움이 안 되는 고객을 걸러내는 은행들의 ‘디마케팅(Demarketing)’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입출금이나 공과금 수납 같은 단순 업무를 보려는 고객은 가급적 점포 안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디마케팅은 고객 차별화 전략=은행의 디마케팅 전략은 쉽게 말해 은행에 손실을 끼치는 ‘불량고객’과 수익에 기여하는 ‘우량고객’을 솎아내 우량고객을 중심으로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

최근 내부 시설 재배치 작업을 마치고 문을 연 하나은행 남대문지점의 점포 구조는 ‘디마케팅’ 전략을 잘 보여주는 사례. △자동화코너는 객장 바깥 △입출금 등 단순 업무 창구는 출입문과 가까운 쪽 △대출과 프라이빗뱅킹(PB) 등 우대고객용 창구는 객장 안쪽에 각각 배치됐다.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던 소파는 등받이 없는 의자로 교체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 친화점포 구축 같은 표현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라며 “입출금 고객은 빨리 일 끝내고 나가달라는 뜻”이라고 귀띔했다.

▽왜 디마케팅인가=본보가 4일 국민 우리 신한 하나 한국씨티 등 5개 은행 전략담당 부행장을 대상으로 ‘올해 경영전략’을 조사한 결과 경영자원을 ‘자산건전성 강화’와 ‘우량고객 확보’에 집중하겠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경기침체로 중소기업 및 개인 대출 부문에서 연체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적극적인 디마케팅을 통해 ‘불량자산’과 ‘불량고객’을 일찌감치 걸러내겠다는 의도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鄭永植) 수석연구원은 “올해는 대출자산 부실 가능성이 은행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며 “우량자산을 많이 확보하고 충당금을 덜 쌓는 은행이 선두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박성목(朴晟穆) 부행장은 “우량고객 유치 경쟁에서 뒤지는 은행은 수년 내 선도 은행 경쟁에서 탈락해 인수합병 당하거나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은행의 우량고객 확보 경쟁은 일반인의 금융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曺永武) 연구원은 “신용을 쌓지 않으면 누구나 ‘디마케팅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주거래은행을 정해 은행 거래를 한 곳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강운 기자 kwoon90@donga.com

:디마케팅: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고객을 밀어내는 마케팅, 즉 돈이 안 되는 고객과는 거래를 끊고 우량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인력과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은 극대화하는 마케팅 기법을 말한다. 은행은 입출금 등 단순 업무 고객을 창구에서 CD기 등 자동화기기로 밀어내거나, 거래실적이 별로 없는 고객 계좌에 수수료를 물리는 방식으로 디마케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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