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노리는 외국자본 대책은 없나

  • 입력 2004년 12월 19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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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IR 팀장인 주우식(朱尤湜) 전무는 요즘 외국인 주주들 때문에 고민이 많다. 외국인 주주들이 정보기술(IT) 경기 전망이 어둡다는 이유로 삼성전자 주식을 대량 매도해 주가를 떨어뜨리는가 하면 삼성전자 지분을 가진 다른 회사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등 비(非)우호적인 투자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 주 전무는 “삼성전자를 인수합병(M&A)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외국인은 아직 없지만 외국인 지분이 60%에 이르러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최근 외국인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례가 잇따라 나타나면서 외국 자본에 대한 경계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일부 외국 펀드가 적대적 인수합병 설을 흘려 주가를 올린 뒤 보유 주식을 팔아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는 불공정 거래 의혹까지 나오면서 ‘반(反) 외국자본’ 정서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정서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외국 자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은 자본 유출이나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 자본의 진출로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있다.

▽위협적인 외국자본=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외국 자본의 입김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많은 배당을 요구하는 것은 기본. 유상 감자(減資)를 통해 자본금을 챙기는 사례도 있다. 외국인끼리 협력해 경영진을 교체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한다.

영국계 BIH펀드에 인수된 브릿지증권은 올해 6월 전체 주식의 67.63%를 유상 감자해 자본금을 2296억 원에서 796억 원으로 줄였다. 줄어든 자본금 1500억 원 가운데 1350억 원은 BIH에 돌아갔다. ▽외국자본, 왜 한국을 노리나=증시 전문가들은 싼 주가와 외국인에 대한 무차별적 시장 개방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외국자본이 한국에 투자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한국 기업의 주가가 싸다는 것. 실적에 비해 저평가된 주식이 많아 나중에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한화증권 이종우(李鍾雨) 리서치센터장은 “전 세계적으로 주가가 저평가돼 있고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한국과 대만뿐”이라며 “특히 한국은 대만보다 경제 규모가 크고 주식 거래금액도 많아 외국 펀드들이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주식 투자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는 것도 외국자본이 한국에 투자하는 또 다른 이유다.

▽대책은 없나=전문가들은 자본시장이 완전 개방된 상황에서 외국 자본만 규제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대신 국내 자본과 외국 자본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범위 안에서 현행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이대순(李大淳) 변호사는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을 막론하고 단기 차익만을 노려 규모가 작은 한국시장을 교란하는 투기자본에 대해 더 많은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외국 자본이 기업의 이익을 과도하게 해외로 빼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의 유상 감자나 배당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외국 펀드가 들어올 때 경영권 취득 목적인지 아니면 투자 목적인지를 명확히 밝히게 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外資 모두 나쁜가…투자 성격따라 5가지色▼

‘외국 자본에는 크게 5가지 색깔이 있다.’

한국증권연구원 김형태(金亨泰) 부원장은 한국 기업에 투자한 외국 자본을 △사모펀드 △기업지배구조펀드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기관투자가 등 5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19일 밝혔다.

김 부원장은 “자본의 성격이 다른 만큼 외국 자본을 모두 투기 자본으로 몰아가는 식의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사모펀드는 50인 이하 소수 투자자를 대상으로 자금을 모아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자본. SK㈜의 이사 선임 요건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 소버린자산운용은 기업지배구조펀드에 해당한다.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것. 뮤추얼펀드는 장기 분산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법인 성격의 펀드. 매년 주주총회를 열고 회계연도마다 결산한 다음 투자자에게 이익을 배분한다. 피델리티가 대표적이다.

헤지펀드는 주식과 채권뿐 아니라 주요국 통화와 실물자산에까지 투자한다. 시세 차익을 얻는 것이 목적이므로 투자 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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