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04]지방은행들 살아 남기 전략

  • 입력 2004년 7월 27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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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3공단에 있는 방위산업체인 다산기공은 기술이 좋지만 자금은 모자라는 전형적인 벤처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 김병학(金炳學) 사장은 지난해 7월 군용 헬기 부속품 개발에 쓸 2억원을 빌리려고 시중은행 지점의 문을 두드렸지만 허사였다. 지점장들은 한결같이 “담보나 지급보증 없이는 서울 본사의 서류 심사를 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사장을 구원한 것은 지역 은행인 전북은행. 홍성주(洪性宙) 행장 등은 김 사장이 대출을 신청하자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정보 수집에 나섰다. “김 사장은 성실하고 회사도 전망이 좋다”는 평판이 많았고 은행측은 신속하게 대출 결정을 내렸다.》

2000년 대구은행이 시작한 ‘지역밀착경영’이 최근에는 6개 지방은행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거대한 국제금융자본이 대거 진출한 상황에서 지방의 금융회사가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생생한 지역 정보가 성공 영업 비결=좁은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연과 학연이 형성되다 보니 은행원과 기업인은 한두 사람을 통하면 서로 아는 경우가 많다.

지방은행은 탄탄한 지역 인맥을 통해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는 기업과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영업에 활용한다.


김극년(金克年) 대구은행장은 “대구은행 지점장은 동장보다 지역 정보에 밝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산은행 정원종(鄭元鍾) 녹산중앙지점장은 “지역 정보를 토대로 믿을 만한 기업은 밀어주고 부실 위험도 빨리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은행은 전체 대출금의 60% 이상을 지역 중소기업에 지원한다. 6월 말 현재 대구, 부산, 광주은행의 대출 연체율은 1%대로 19개 은행 전체 평균인 2.3%에 비해 크게 낮다. 지역 정보를 바탕으로 위험관리를 잘 했기 때문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어떨까. 대구의 철강 업체인 대현테크 장용현(張龍鉉) 사장은 “은행이 대출 기업의 식당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파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부산의 수산물 가공 업체인 해진물산 손석민(孫錫珉) 사장은 “부산은행에는 바다를 아는 직원들이 많아 말이 잘 통한다”며 “언제라도 은행장을 직접 만날 수 있고 시중은행에 비해 의사결정이 빨라 좋다”고 말했다.

▽행장들이 직접 발로 뛴다=은행장들이 지역 기업체 CEO들을 직접 챙긴다는 것도 시중은행과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비결이다.

심훈(沈勳) 부산은행장은 21일 오전 ‘모범 중소기업:부산은행’이라고 쓰인 멋진 문패 하나를 들고 거래 기업인 대한강재를 방문했다. 그는 거래업체 사장을 수시로 만나고 한 달에 두 번씩 모범 기업을 방문해 문패를 달아주고 있다.

“은행장이 집무실에서 도장이나 찍던 시절은 갔습니다. 행장이 적극적으로 CEO들을 챙겨야 지역 기업들을 서울의 시중은행에 뺏기지 않습니다.”

김 대구은행장은 20일 오전을 주요 기관 고객인 계명대의 신임 총장 취임식장에서 보냈고 밤에는 전임 총장의 상가에 들렀다. 그는 30명의 지역 기관장 회의에 참석하는 유일한 민간 기업체 CEO다.

▽주민 감동은 은행의 이익=지방은행들은 일반 기업체보다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을 벌인다. 지역 주민들이 마음을 돌리면 은행이 망한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 그 결과 지역 예금시장 점유율이 30%를 넘는다.

초복(初伏) 무더위가 한창인 20일 오후 3시.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보육시설 ‘영생보육원’에 대구은행 남부지역봉사단 소속 직원 20여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보육원 관계자에게 성금을 전달한 뒤 바닥청소와 유리창 닦기 등 봉사활동을 벌였다. 대구은행에는 모두 20개의 지역 봉사단에서 직원 20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부산시청 마당에서는 ‘부산 시민 독서생활화’ 운동의 하나로 시민들이 가진 책을 서로 바꿔보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교육청이 주관했으나 2만여명의 참가자들을 직접 접대한 것은 지난해 4월 창립된 ‘부산은행 지역봉사단’ 소속 직원 2000여명이었다.

광주은행은 요즘 청소년을 상대로 활발한 금융 교육을 벌이고 있다. 정태석(鄭泰錫) 광주은행장은 “올 하반기에는 영업점 하나가 지역 학교 하나의 금융교육을 책임지는 ‘1영업점 1학교’ 제도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구·부산=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전주·광주=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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