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04]‘33일째 파업’ 코오롱 구미공장

  • 입력 2004년 7월 25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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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코오롱 구미공장. 사무실 입구에 구호가 적힌 벽보들이 붙어있다. 구미=이정은기자
33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코오롱 구미공장. 사무실 입구에 구호가 적힌 벽보들이 붙어있다. 구미=이정은기자
가동이 중단된 20여만평의 공장 단지는 유령도시 같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 속 코오롱 구미공장은 적막했다.

사무실 앞에는 ‘때려잡자 ○○○(경영진 이름)’ ‘개밥으로 줘 버리자’ ‘○○○을 참수하자’ 등 경영진을 비난하는 문구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뭐 하러 공장에 들어가려고 합니까. 안이 엉망진창인데….”

문 열기를 주저하는 직원을 따라 들어간 폴리에스테르 원사(原絲)생산 공장에서는 화학물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둠 속 손전등 불빛 사이로 보이는 공장 내부는 휑했다.

노조 총파업으로 공장 가동을 멈춘 지 25일로 33일째.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노사 양측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1969년 설립된 구미공장은 폴리에스테르 원사와 스판덱스, 필름, 타이어코드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 공장의 연간 매출액은 회사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6000억원. 화섬업계는 한국 섬유산업의 생존 여부가 거론되는 현 시점에서 이번 코오롱의 구조조정 ‘진통’이 어떻게 끝날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노사=코오롱의 파업이 이렇게 장기화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1400여명의 조합원들이 한 달 넘게 일손을 놓았다. 이 가운데 120여명은 경기 과천 본사 로비를 점거한 채 상경 투쟁을 벌이고 있다.

쟁점은 낡은 폴리에스테르 공장 폐기와 유휴 인력의 재배치 문제. 이 노후 설비는 작년 마이너스 24%대의 매출이익률을 냈다. 올해는 마이너스 45%대로 예상된다.

회사측은 돌릴수록 적자가 나는 이 공장을 올해 안에 반드시 정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조는 신규 투자를 먼저 한 뒤 한계사업을 정리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유휴 인력 재배치 과정에서 줄어드는 임금 손실의 보전 폭, 새로 짜여진 4조3교대(기존 3조3교대)에 필요한 인력 충원 방법 등을 놓고도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한 달간의 파업에 따른 매출 손실액은 3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원재료를 공급하거나 원사를 구매하는 20여개 협력업체의 공장도 멈췄다. 그나마 스판덱스 공장은 협정근로자(노사 합의에 따라 파업 때도 생산 공정이나 원료의 특성상 가동이 중단되면 안 되는 주요 생산 설비를 대상으로 조업하는 근로자)에 의해 가동되고 있지만 노조가 제품 출하를 막고 있다.

▽발목 잡힌 구조조정=회사측은 구조조정에 성공하지 못하면 첨단 소재(스판덱스, 타이어코드 등)와 정보기술(IT) 분야 중심의 미래 전략을 추진하기 어려워진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화섬업체로서의 고민도 담겨 있다. 코오롱은 섬유사업 부문의 적자 등으로 작년 684억원의 적자를 냈다.

구미공장장인 조희정 상무는 “화섬업계의 절반은 중국업체의 저가 공세 등에 밀려 무너졌다”며 “올해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만큼 원칙대로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측은 23일 노조 핵심 간부 2명을 고소하고 징계 절차를 밟는 등 강경한 태도로 돌아섰다.

업계 관계자들은 코오롱이 제때 구조조정을 하지 못해 더 힘들어진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코오롱 임원진에서조차 “5년 전에 했어야 할 사업 정리”라는 말이 나온다.

노조 김하묵 선전부장은 “조합원 사이에서는 회사가 경영상의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불만도 높다”고 말했다.

대우증권 이수혜 애널리스트는 “회사측이 섬유사업 부문의 구조조정을 미루고 부실 관계사에 대한 투자 정리를 제때 하지 못한 결과가 이제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미=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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