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먹던 1000원짜리 군것질도 끊었어요”

  • 입력 2004년 7월 14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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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오래가면서 서민들의 씀씀이가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세 상인들의 시름도 깊어간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유명 백화점 앞에서 간식을 파는 리어커와 구둣방에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다.-박주일기자
불황이 오래가면서 서민들의 씀씀이가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세 상인들의 시름도 깊어간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유명 백화점 앞에서 간식을 파는 리어커와 구둣방에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다.-박주일기자
《진성훈(陳聖勳·35)씨는 14일 운수가 사나웠다. 아침부터 버스를 잘못 탄 데다 진흙을 밟는 통에 새 구두가 엉망이 됐다. 출근이 늦었지만 돈을 생각해 택시 탈 엄두는 내지 못했다. 매일 다니던 구둣방 문도 닫혀 있었다. 이달 초부터 “손님이 없으니 장사 그만둬야지” 하던 구둣방 주인이 결국 휴업에 들어간 것. 진씨는 가장(家長)이다. 그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식품업무팀에서 일하고 받는 월급 270만원이 집안 수입의 대부분. 올해 1∼3월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은 290만원이었다.》

“저 같은 서민들은 소소한 지출도 줄입니다. 서민을 상대하는 영세 상인이 힘들 것 같아요.”

정말 그럴까. 진씨의 하루를 좇아 봤다.

오전 9시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앞. 이곳에서 4년째 구두를 닦아 온 김기중씨(58)가 한 평 남짓한 구둣방 문을 열었다.

“점심시간까지 20켤레 닦기가 힘들어요. 2년 전만 해도 30∼40켤레는 거뜬했는데.”


하루 매출액은 10만원 안팎. 그나마 동업자와 수입을 나눈다.

명동 구둣방의 주 수입원이던 상품권 매매도 뜸하다.

오전 10시. 40대 여성이 구둣방 문을 두드렸다. “A백화점 10만원짜리 상품권 얼마예요?” “9만6000원요.” 대답을 들은 여성은 도망치듯 사라졌다. 다른 구둣방과 가격을 비교하려는 알뜰족이다.

상품권 매매업자인 임병문씨는 “도난 상품권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일도 많다”고 귀띔했다. 그는 백화점이 거래 정지시켜 무용지물이 된 도난 상품권 20장을 내보였다.

간식이나 군것질 거리를 파는 노점상들도 울상이다.

명동성당 근처에서 토스트를 파는 성모씨는 딱딱해진 식빵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그는 “예전엔 아침 한나절이면 재료가 바닥났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 팔아도 준비한 재료를 다 못 쓴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진씨는 이날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 밥값이 싸기도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충동구매라도 할까 걱정됐다.

“설탕으로 만든 ‘달고나’를 좋아하는데 매일 1000원씩 쓰는 것도 아깝더라고요.”

단골 고객이 끊긴 ‘달고나 아줌마’는 애가 탄다. 윤영선씨(59)는 명동에서 가장 오래된 달고나 장수. 올해로 7년째다. 그는 “외환위기 땐 소비자들이 군것질에까지 돈을 아끼진 않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평일 하루 매상은 2만∼3만원. 외환위기 때도 하루 5만원어치는 팔았다고 윤씨는 설명했다.

오징어를 구워 파는 현모씨는 “여름엔 원래 장사를 접지만 봄에 워낙 못 벌어서 한번 나와 봤는데 역시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강남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다.

진씨가 이날 오후 시장조사차 방문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이 백화점 휴게실에서 음료수 자판기를 관리하는 김모씨는 “여름인데도 사먹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 불황은 건강식품인 녹즙에까지 영향을 줬다. 압구정동 일대에서 녹즙을 파는 유성순씨(46)는 “경제적인 이유로 녹즙을 끊거나 신청 물량을 줄이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오후 9시를 넘긴 늦은 퇴근길.

회사 앞에 늘어선 택시들을 보며 진씨는 고민에 빠졌다. 탈까말까. 버스를 기다린 지 20분. 진씨가 택시 문을 열었다.

개인택시 운전사 박범렬씨(58)가 반갑게 맞았다.

“퇴근시간대에 택시를 타는 직장인 수가 2년 전의 30%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박씨는 요즘 하루 20시간 차를 몬다. 수입은 12만원. 2년 전 12시간 운전하고 22만원 내외로 벌던 때와 비교하면 큰 차이다.

“기사님, 내려주세요.” 미터기의 요금이 5000원을 넘자 진씨는 서둘러 택시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탔다.

홍수용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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