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 현물 깡’ 성행

  • 입력 2004년 6월 15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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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자리를 잃은 이모씨(30)는 최근 급하게 200만원이 필요하게 되자 대출알선업체인 L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대출신청’을 클릭했다. ‘상담신청서’를 작성하고 30분 뒤 상담원의 전화가 걸려왔다.

“카드로 물건만 사면 돈을 빌려 드립니다. 손님이 직접 대형 할인점에 가서 사도되고 저희가 대신 사드릴 수도 있습니다. 산 물건은 저희가 되팔아 드리니 걱정하지 마세요. 수수료는 물건 구입 가격의 25%입니다.”

이씨는 당장 L사를 찾아가 계약을 하고 업체가 권해 준 대형 할인점에 가서 DVD 등 300만원어치의 가전제품을 24개월 할부로 구입했다. 이 물건을 L사에 넘기자 수수료를 뺀 225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씨는 “당장 공돈이 생긴 것 같아 좋았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다음 달부터 돌아올 카드 대금을 어떻게 갚을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최근 대형 할인점에서 카드로 물건을 사고 급전(急錢)을 마련하는 ‘할인점 현물(現物)깡’이 유행이다. 가짜 매출전표나 백화점상품권 등을 이용한 전통적 카드할인(일명 카드깡) 방식에 대해 당국의 단속이 심해지자 나타난 현상이다.

▽‘할인점 현물깡’ 왜 인기인가=L사와 같은 ‘할인점 현물깡’ 업체 수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e메일 등을 통한 불법 카드깡 업체에다 당국에서 정식 허가를 받은 합법적인 대출알선업체들도 이 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이용되는 물품은 환금성(換金性)이 뛰어난 쌀과 가전제품 등. 특히 가전제품은 부피는 작지만 비싸고 구입가의 80∼85%에 되팔 수 있기 때문에 인기다. L사의 경우 이씨가 넘긴 물건을 구입가의 85%에 되팔아 10%의 이익을 남겼다.

대형 할인점 관계자는 “개인별 품목별 구매 한도를 정해 카드깡을 목적으로 한 구매를 자체 단속하는 할인점이 많지만 매출 확대가 급한 일부 할인점들이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도 눈 감아 주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가짜 매출전표를 이용한 카드깡에 대해 단속을 강화하고 과거 카드깡의 온상이던 백화점과 금은방 등이 까다롭게 물건을 팔면서 상대적으로 단속이 허술한 할인점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 크지만 단속 어려워=카드깡 이용자는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기 쉽다는 점에서 ‘할인점 현물깡’의 피해는 크다. 카드업계 조사결과 카드깡 이용자의 95% 이상이 1, 2년 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려의 목소리는 신용불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카드업계에서 먼저 나왔다. 지난주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카드업계 실무자 회의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할인점 현물깡’에 대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신전문업법상 현물깡 행위는 ‘변칙적인 자금조달’에 해당돼 관련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 조성목(趙誠穆) 팀장은 “고객과 업체, 유통업체의 공모(共謀) 관계를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카드깡 : 사채업자가 특정 카드가맹점과 짜고 허위로 카드매출을 해서 조성한 자금으로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비싼 이자를 받고 대출해 주는 행위를 말한다. 현물깡은 카드깡의 일종으로 물건의 매매가 실제로 이뤄진다는 특징이 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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