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절감" vs "뇌물 악용"…고액권 발행 찬반 불붙어

  • 입력 2004년 1월 14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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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권이나 5만원권 등 고액권(高額券)을 새로 발행해야 하는가. 또 발행한다면 언제쯤이 적당한가. 고액권 발행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갈수록 가열되고 있다.

경제계는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에서는 ‘뇌물용 화폐’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한다. 정부는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빠른 시일 안에는 어렵다’며 조기발행에는 부정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번 논란은 박승(朴昇)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고액권 발행과 위폐방지방안 및 도안혁신, 화폐단위절하(디노미네이션) 등을 4월 총선 후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박 총재의 주장 가운데 가장 관심이 집중된 것은 고액권 발행이었다.

세계 주요국의 최고액 화폐는 미국은 100달러(약 11만9000원), 유럽은 500유로(약 76만원), 일본은 1만엔(약 11만2000원), 영국은 50파운드(약 11만원), 중국은 100위안(약 1만4000원) 등으로 한국(1만원권)에 비해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3일 “(화폐제도 개편방안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원칙적으로는 찬성했다. 그러나 시행 시기에 대해서는 “정치, 사회적 합의가 다져지는 시점이나 그 후가 좋을 것”이라며 정치상황 등을 고려해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기업과 경제단체, 경제 전문가들은 고액권 화폐 발행에 찬성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이현석(李鉉晳) 상무는 “연간 수표발행에 드는 돈은 2800억원, 유통에 따른 간접비용은 5000억원으로 8000억원 가까운 돈이 공중에 날아간다”면서 “한국의 경제규모나 기업의 활동규모로 볼 때 이제 고액권을 발행할 때”라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 김병연(金炳淵) 선임연구위원도 “고액권 화폐발행의 기준은 국민생활의 편리성이 돼야 하며 발행하는 쪽이 편익을 늘릴 것으로 본다”면서 “최고액 화폐의 단위로는 자기앞 수표로 익숙한 10만원권이 적당하겠지만 한국의 경제규모나 국민의 수요 등을 통해 적정한 선에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위평량(魏枰良) 사무국장은 “10만원권이 발행되면 1만원권 시절에 ‘차떼기’를 해야할 만한 불법 정치자금이 여행가방 하나에 들어가게 된다”면서 “고액권은 비자금 조성이나 음성거래 등에 사용될 수 있으며 수표추적을 통한 뇌물수사도 힘들어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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