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세이]정도언/감원공포 이기는 법

  • 입력 2003년 11월 17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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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직장을 떠난 사람이 사상 최대인 340만명이다. 그중에 정년을 채우고 떠난 사람은 1000명당 4명밖에 되지 않으며 상당수가 해고로 직장을 떠났다. 이제 거의 모든 직종과 연령대에서 평생직장을 갖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다. 이에 따른 ‘감원 공포’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해고당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엄청난 일일 수밖에 없다. 해고되면 월급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당연한 이유 외에도 여러 심리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선 해고된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이 받는 충격, 가족 내 위치와 역할의 역동적 변화가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특히 ‘체면=목숨’인 우리 문화에서는 가족에게도 가장의 해고는 엄청난 충격이 된다. 따라서 해고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다른 직장을 찾는 것 외에도 초기부터 이러한 변화들을 당사자와 가족이 예측하고 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

우선 당사자에게는 소속감이 없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양과 달리, 집단이 개인보다 우선시되는 우리 문화에서는 집단을 떠나 홀로 남겨진다는 것은 거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다. 더욱이 평소 가족간의 관계가 별로 안 좋아 직장과 동료들만이 마음으로 의존할 수 있는 중요한 대상이었다면 문제가 더 커진다. 평소 돌보지 못하던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고 힘들어도 노력해야 한다.

둘째, 가장인 남편이 퇴직을 하면 아내와의 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얼굴 보기 힘들다가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부부간에 사이가 안 좋았다면 더욱 심리적인 부담이 커진다. 심하면 이혼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부부가 마주앉아 위기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합의점을 이끌어내야 한다.

셋째, 자식들과의 관계에서도 유교문화적인 가장의 권위가 갑자기 추락하므로 큰 변화가 온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입장에서 평소 같으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자식의 한마디를 이해하고 넘기기 어려워진다. 달라진 관계를 마음 아프지만 받아들이고 자식과 솔직한 대화를 갖도록 애써야 한다.

넷째, 부부간이나 자식과의 갈등이 가정폭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므로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한번 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자제력을 길러야 한다.

해고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고통스러운 경험이며 꿈과 환상의 좌절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새로운 기회이며 평생 소위 월급쟁이로 살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변환점일 수 있다. 공포는 공포를 유발하는 자극을 공포감으로 느끼는 사람에게만 공포이며, 그러지 않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자극일 뿐이다. 물론 감원에 대한 저항력이 개인의 경쟁력과 비례한다는 점을 잊지 말고 평소에 지속적으로 자기개발을 해야 한다.

한 잔의 술을 앞에 두고 회사 분위기에 대한 불만이나 동료와의 경쟁에서 나타나는 갈등에 대한 분노를 토로하는 것이 잠시나마 마음을 후련하게 해줄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음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감원 공포는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정도언 서울대 의대 교수·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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