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성정밀기계 이종기사장 장애 딛고 ‘조각기’ 최고기술자로

  • 입력 2003년 7월 10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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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신체적 장애는 단지 불편한 것일 뿐 삶의 결정적인 장애물은 아닙니다.”

세계 최고 품질의 ‘컴퓨터 조각기’를 제조 생산하는 중소기업인 ‘협성정밀기계’ 대표 이종기씨(57·경기 남양주시·사진)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20대가 되면서 ‘색소망막변성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25세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이씨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데다 눈까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니 삶이 막막해져 주머니 속에 한 움큼의 수면제를 넣고 다녔던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이를 이겨내고 20년 넘게 조각기(engraving machine) 제조라는 한 우물만 팠다. 이제 그는 장애와 시련을 딛고 일어서 ‘세계 최고의 기계를 만드는 장인’이라는 자신감에 넘친다.

이씨가 1978년 설립한 이 회사는 수동식 조각기를 제조하는 업체로 출발했다. 회사 규모(공장 80평에 직원 9명)는 작지만 현재 오토캐드(AutoCAD), 일러스트레이터 등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동으로 철판이나 스테인리스 아크릴 등의 표면 위에 정교한 무늬를 파거나 구멍을 뚫는 컴퓨터 조각기까지 만든다.

이씨는 수동식 조각기에서부터 250여가지 부품이 들어가고 0.01mm 오차 범위 내의 초정밀 작업을 수행하는 컴퓨터 조각기(대당 1500만원)까지 이 회사의 모든 제품을 설계한 장본인.

앞이 보이지 않는 이씨는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고, 머리로 상상해서 기계를 설계한다. 하루 3, 4시간의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머릿속으로 제품을 설계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일을 30년째 해오고 있다. 그 결과 이씨는 ‘머릿속에서 기계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입신(入神)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씨가 처음부터 복잡한 기계를 설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첫 도전은 간단한 허리띠 버클을 만드는 것이었다. 전문가를 수소문해 적당한 재료와 모양, 만드는 방법 등을 알아낸 뒤 머릿속으로 설계를 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이를 제작했다. 이씨가 1970년대 중반 당시 한국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미군용 버클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는 꼬박 3년이 걸렸다.

77년 이씨는 금속 표면에 무늬나 글자를 새길 수 있는 수동식 미국산 중고 조각기 하나를 얻었다. 기계를 분해해 모든 부품의 치수를 재어 같은 부품을 만들고 기계를 조립하는 데 6개월, 같은 방법을 반복하며 기계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또 6개월이 걸렸다.

이씨가 머릿속으로 설계한 것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서는 가족과 직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씨의 두 아들은 현재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있다.

이씨가 만든 제품의 품질은 이제 해외에서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 이씨는 2001년 미국의 유명 기계 업체인 ‘퀄러티 원(Quality One)’사와 총판 계약을 하고 지난해 70대의 컴퓨터 조각기를 수출하는 결실을 거두기도 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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