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의 씀씀이를 지켜보고 있다

  • 입력 2003년 5월 12일 16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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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카드 회원 강모씨(여·34)는 최근 황당한 일을 당했다.

서울의 한 서점에서 두차례 카드를 사용한 뒤 20여분 뒤 인근 미술관에서 물건을 사는데 카드의 사용이 중지됐다.

결국 현금으로 물건을 산 강씨가 거래처 사람과 만나던 중 친정 아버지에게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신용카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카드사에서 강씨를 찾는 전화가 친정 집으로 걸려왔다는 것. 강씨는 거래처로부터 '신용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을까봐 얼굴이 화끈거렸다.

화가난 강씨가 카드사에 항의하자 "사고예방시스템(FDS)에 이상 거래로 잡혀 카드 사용이 중지됐는데 본인이 직접 사용한 것 맞느냐"는 엉뚱한 질문을 받았다.

강씨는 자신의 사생활이 일일이 감시당하는 것 같아 불쾌한 심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카드사들이 도난이나 분실에 따른 카드의 부정사용을 막기 위해 도입한 FDS가 부정사용을 막는다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도입 과정에서 회원들의 동의절차나 고지를 제대로 밟지 않아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당신의 카드 사용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

FDS는 회원별 카드사용 행태와 사고 유형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컴퓨터에 입력한 뒤 회원의 평소 카드사용 패턴에 어긋나는 거래를 적발하는 시스템이다.

회원이 카드를 분실한 사실을 알고도 신고를 안했다거나 카드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경우를 제외하고 카드사가 부정사용의 책임을 지다보니 부담이 너무 커 이런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것. 도입 초기에는 도난신고 카드의 거래를 잡아내는 방식으로 운영되다가 최근에는 모든 회원들의 카드사용을 일일이 모니터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됐다.

예컨대 평범한 여성 회원이 단란주점 등에서 사용하거나 평소 쇼핑을 별로 하지 않는 남성이 여성 명품매장에서 고가의 물건을 사면 이상거래로 분류된다.

카드사들은 이같은 이상거래가 발견되면 즉시 카드 거래를 중지시키고 회원에게 연락해 본인 사용 여부가 확인돼야만 사용중지를 풀어준다.

▲사생활 침해 논란

FDS는 카드의 부정사용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시스템이 안정되지 않아 강씨의 경우처럼 정상적인 거래를 부정사용으로 인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S카드 회원인 직장인 홍모씨(37)는 부정사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온 카드사 직원에게 "아내가 카드를 갖고 다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나중에 확인해주겠다"고 말한 뒤 한달 넘게 카드가 중지된 상태다.

이처럼 회원들이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을 수 있는데도 카드사들은 FDS에 대해 약관에도 명시하지 않는 물론, 회원들에게 고지해 동의를 받는 절차도 밟지 않았다.

소비자보호원 신용묵 금융팀장은 "회원들이 어떤 피해를 입을지 알수 없는데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고 말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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