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어디로 가나]독립적 경영론 vs 대주주 역할론

  • 입력 2003년 4월 21일 18시 32분


코멘트

《SK그룹이 갈림길에 서 있다. ‘계열사 독립생존’이냐, ‘선단식 그룹회생’이냐의 갈림길이다. SK사태의 해법을 둘러싸고 ‘월가(街)식 시장주의’와 ‘총수 경영권’이라는 두 세력이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SK의 미래는 SK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재벌의 미래상이 달라질까’하는 주제와 연계돼 있다. 한국 재계의 미래상과 관련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회전인 것이다. 또한 많은 단체가 이 사안과 이해관계를 맺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이들까지 동참해 복잡한 대리전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다.》

▽독립경영론의 크레스트=최태원(崔泰源) SK㈜ 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SK㈜가 SK글로벌을 지원해야 한다. 글로벌이 회생하지 못하면 최 회장이 채권단에 맡긴 SK계열사 지분을 몽땅 포기해야 하는 것.

그러나 SK㈜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유정준(兪柾準·41) 전무는 최 회장에 대한 배려보다는 SK㈜ 회사 편에 서서 철저한 손익계산을 하는 냉정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유 전무는 “주주 이익에 반하는 결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SK의 한 임원은 “회사 내부에선 유 전무가 기업의 수호자로 평가받고 있다”며 “여차하다가 계열사들이 함께 쓰러질 수 있으므로 그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력의 진짜 핵심은 14.99%의 지분을 확보해 SK㈜의 최대주주가 된 크레스트증권. 장기투자가임을 자처한 크레스트측은 SK의 앞으로의 경영과 관련해 △주주가치의 확립 △기업지배구조 개선 △코리아 디스카운트 근절 등의 원칙을 공포했다.

같은 편으로는 크레스트 이외의 외국인투자자, 시장주의자, 소액주주운동을 하는 참여연대, 공정거래위원회 등 일군의 세력이 포진하고 있다.

▽‘대주주 역할론’ 주장하는 은행=반면 하나은행 등 채권단은 ‘SK 계열사가 독립생존의 길을 갈 경우 SK글로벌에 빌려준 돈을 받기는 다 틀렸다’고 보고 그룹 전체가 문제를 해결하는 선단(船團)식 회생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또 그룹 지원을 끌어내려면 강력한 오너십을 가진 최 회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채권단이 법원에 최 회장 석방탄원을 하는 것도 ‘그룹 차원의 지원책을 끌어낼 사람은 최 회장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이 방식이 소액주주와 일반 국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이며 은행은 물론 국가경제에도 훨씬 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 독립경영론자들의 ‘주주의 유한책임’ 원칙에 맞서 ‘대주주 책임론’을 펼치기도 한다.

이 같은 주장은 경영권 안정을 수호하려는 재계의 정서적 지지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진보적 시민단체인 대안연대도 경영권과 관련해서는 이 편을 들고 있다. ‘자본의 국적성’을 중시하는 대안연대는 “재벌들이 철저한 반성과 사회적 통제를 받아들인다는 전제 하에 경영지배권을 안정시켜줘야 한다”(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주장이다.

▽어떻게 될까=초기에는 독립경영론 쪽이 압도했지만 최근 채권단이 나서는 등 대주주 역할론이 조금씩 힘을 모아가는 느낌이다. 21일 “SK글로벌을 살리는 것이 계열사, 주주, 국가경제에 모두 도움이 되는 일이다. 실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크레스트를 설득하고 채권단과 협의해 회생방안을 만들 것”이라는 SK그룹의 발표는 큰 힘이 된 셈.

하지만 이날 SK그룹이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밝히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계열사가 손해를 감수하고 SK글로벌을 돕자”고 크레스트를 설득할 수 있을지가 매우 불투명하다. 20일 밝혀진 SK글로벌 등의 특수관계사 5300억원 편법지원 사실도 재벌의 구태를 드러내는 사례여서 대주주 역할론자에게는 큰 부담.

힘겨루기의 판세를 확인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허승호기자 tigera@donga.com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