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SK 경영권 논란이 남긴 교훈

  • 입력 2003년 4월 15일 22시 45분


코멘트
영국계 투자펀드인 크레스트 시큐러티스의 SK 주식 집중 매입으로 시작된 적대적 인수합병(M&A) 논란은 정부의 재벌정책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크레스트가 확보한 지분에 따라 SK㈜와 SK텔레콤이 차례로 적대적 M&A에 노출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에 국경이 사라진 글로벌시대에는 외국인이 국내 기업을 적대적으로 인수할 수도 있다. 시장원리에 반하는 인위적 제약을 가해 국내 기업을 무작정 보호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국내 기업이 최소한 외국인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 줘야 한다. 외국기업이나 외국계 투자펀드는 주식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데 국내 기업은 출자총액제한제도에 걸려 주식 취득에 제약을 받고 심지어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마저 행사할 수 없다면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없다. 기업들이 역차별이라고 항변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크레스트측은 SK 주식을 사들인 것이 적대적 M&A나 기존 대주주에게 비싸게 되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투자펀드의 유일한 목적은 투자수익을 많이 올리는 것이다. 목표한 수익을 얻으면 언제라도 주식을 되팔고 떠나는 것이 그들의 속성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외국인이 지배구조가 취약한 국내 기업을 공격해 돈을 버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정부는 SK 계열사들이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의 충격을 덜 받은 것은 출자총액제한제도 덕분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유지해온 국내 일부 재벌기업들도 반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글로벌시대에 외국인에게만 유리한 제도를 제공해야 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어느 나라도 자국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무기를 빼앗은 뒤 외국 기업과 경쟁시키지 않는다. 재벌기업들도 새 모습을 보여야겠지만 국내 기업에 불리한 제도를 고집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이번 기회에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손질을 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