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시장 흔드는 조합원 파워

  • 입력 2003년 4월 8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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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사업에서 조합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건축사업 뒤 조합이 내야할 분담금 규모를 놓고 재건축조합과 시공사가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 잠실 주공아파트. 동아일보 자료사진
재건축사업에서 조합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건축사업 뒤 조합이 내야할 분담금 규모를 놓고 재건축조합과 시공사가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 잠실 주공아파트. 동아일보 자료사진
재건축 시장의 세력 균형이 깨지고 있다. 그간 재건축 사업을 주도해 왔던 건설회사를 제치고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재건축 사업에서 명목상 우월한 위치에 있는 쪽은 입주민들로 구성된 조합이다. 건설회사는 조합이 선택한 피고용인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건설회사가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다. 재건축 추진 단계에서부터 건설회사가 조합에 대여금 형태로 각종 사업비를 대주기 때문에 조합은 금전적 구속을 당하기 마련이다. 또 조합은 각종 건설 법규와 인허가, 시공 관리 등에서 비(非)전문가 집단인 까닭에 대부분 사업 과정을 건설회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반전됐다. 조합의 의지로 재건축을 풀어가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합의 ‘반란’〓7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시공사 선정을 잠정 연기했다. 건설회사들이 입찰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A건설 관계자는 “평당 2500만원에 일반분양아파트를 분양하라고 하는 건 자살행위”라며 “주민들이 무리한 이익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분양아파트 분양가가 오르면 그만큼 조합 수입이 늘어난다.

반면 추진위원회측은 분양가 문제는 건설회사가 내건 명분일 뿐 실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주장한다. 추진위원회가 요구한 시공 조건은 △건설회사가 시공 보증금 100억원을 예치한 뒤 설계를 변경하면 전액 몰수 △조합 총회 결의사항 수용 △하도급 업체 선정 때 조합과 협의 등이었다. 건설회사가 시공 과정에서 공사비를 올릴 수 있는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고 사업 주도권을 조합이 쥐겠다는 것이다.

‘평당 분양가 2500만원’이라는 조건도 확정된 게 아니다. 건설회사가 얼마가 되든 일정 수준의 분양가를 책정키로 해 놓고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 차액만큼을 조합에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추진위원회는 이를 위해 건설회사 근무 경력이 있는 주민들로 구성된 기술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설계에서부터 분양가 책정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

▽시공사 교체도 검토〓최근 분담금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는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재건축 사업에서도 조합원의 ‘힘’이 느껴진다. 잠실주공 3, 4단지 비상대책위원회는 “시공사와 기존 조합이 터무니없이 높은 분담금을 책정해 조합원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시공사와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주공4단지 비대위측은 2월말 관리처분총회를 무산시킨 데 이어 새 집행부 선임을 위한 임시총회를 계획 중이다. 비대위측 정근기 총무는 “시공사가 분담금 문제에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시공사를 바꾸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잠실3단지 역시 분담금 문제를 둘러싸고 12일 집회를 열 예정이다. 입주자대표회의 강기원 대표는 “15평형 소유자가 33평형을 분양받으면 분담금만 1억4000만원, 금융 비용을 포함하면 1억5000만원”이라면서 “조합원 내에서는 시공사를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2단지에서도 일부 조합원들이 다른 시공사와 접촉 중이다.

▽“무리한 사익(私益) 추구” 비판도〓재건축 조합측의 요구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조합이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결국 분양가 인상을 택하게 된다. 이는 곧 주변 집값을 자극해 전체적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한강맨션이 평당 2500만원에 분양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집값이 최고 3억원까지 뛰었다. 인근 ‘LG자이 아파트’ 대형 평형의 경우 한 달 새 1억원이나 올라버렸다.

재건축을 통해 분양된 경기 광명시 현진에버빌도 일부 평형이 평당 1000만원 이상에서 분양된 뒤 이 일대 아파트값이 일시에 500만∼2000만원 상승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 아파트 단지에서 분양가가 오르면 주변 지역 가격도 덩달아 오르기 마련”이라며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업 지연에 따른 주민 피해도 예상된다. 올해 7월부터 적용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는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뒤 시공사를 선정토록 하고 있다. 따라서 그 전까지 시공사 선정 등 초기 재건축 절차를 밟지 않으면 사업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

시공사와 마찰 빚고 있는 재건축 단지별 쟁점
아파트시공사쟁점
한강맨션시공사 선정 유찰조합측의 무리한 일반분양가 책정 및
고액 입찰보증금 제시
잠실주공 2단지대림, 대우, 삼성무이자 이주비 지급여부.
시공사 교체 검토 중.
잠실주공 3단지현대산업개발,
현대, LG
분담금 과다 책정.
시공사 교체 검토 중.
잠실주공 4단지삼성,LG분담금 과다 책정, 일반분양가 인상 요구. 임시총회 준비중.
고덕주공 2단지삼성,LG분리재건축추진 위해 타 시공사와 접촉 중.


고기정기자 koh@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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