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편법 상속-증여]20억빌딩 감정가 낮춰 稅1억 줄여

  • 입력 2003년 3월 31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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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상속 증여 제도를 강화할 방침을 밝히면서 일부 부유층들 사이에 ‘신속하고 안전하게’ 부를 대물림하기 위한 갖가지 묘안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합법적인 절세(節稅)와 불법적인 탈세(脫稅)의 경계선을 오가며 증여를 서두르고 있다. 해외로 돈을 빼돌리려는 기미도 나타나고 있다.

국세청 공무원 출신 A세무사는 “요즘에는 아예 ‘수족(手足)’이 되어달라고 말하는 재산가들이 나타날 정도”라며 “상속 증여 포괄과세가 시작되기 전에 어떻게든 증여 문제를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웰스 매니저(Wealth Manager) K씨는 “요즘 홍콩이나 스위스 은행의 프라이빗 뱅커(PB)들이 정기적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가 늘었다고 들었다”며 “부유층 중에는 외국의 은행이 비밀을 보장한다고 생각해 돈을 해외에 맡기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유층 편법 상속-증여 사례
1.부동산 공시지가 이용
공시지가가 시세의 50%에 못 미치는 서울 외곽이나 경기 강원지역 부동산이나 토지 임야를 구입해 자녀에게 증여.
2.비상장주식 이용
비상장주식을 친구나 제3자에게 헐값으로 넘긴 흔적을 남기면 양도세와 증여세 과세 기준이 그만큼 낮아짐.
3.대출금이 잡혀 있는 부동산 양도
부동산을 넘겨줄 때 증여세로 최고 50%를 감당하느니 차라리 이자 등 금융비용과 양 도세(36%)를 부담토록 하며 증여하는 방식.
4.해외증여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주유소나 한의원을 차려놓고 자금을 끌어들인 다음 편법 으로 증여하는 방식.

▽부동산 공시지가 이용〓서울 강남 지역 세무사들에 따르면 최근 30억원 이상의 재산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동산 증여방식은 낮은 공시지가를 이용한 증여다.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내면서 실제로 이보다 큰 액수를 증여할 수 있기 때문.서울 강남의 경우 공시지가가 시가의 85∼90%선까지 올랐지만 서울 일부 지역은 여전히 시세가 공시지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곳이 많은 실정이다.

또 경기 강원 등 수도권 외곽의 임야나 대지의 경우 정확한 가격 산출이 어렵기 때문에 증여를 위해 사들이는 경우도 있다.

또 7월부터 공시지가가 전국 평균 11.5% 오르고 서울은 평균 20%, 강남 서초 송파 지역은 30% 정도로 지난해의 2배가량 오를 전망이어서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부동산의 증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게 세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증여를 하기 전에 감정평가를 해서 기준시가를 크게 낮추는 방법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한 중소기업주는 시가 20억원 상당의 빌딩에 대해 감정평가를 의뢰, 기준시가를 18억원에서 14억원으로 낮췄다. 결국 증여세도 4억2000만원에서 3억16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의뢰인들은 감정평가사에게 기준시가를 낮춰줄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여를 하려는데 감정평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면서 감정가를 적당히 낮춰 계산해 줄 것을 요구한다는 것. 한 세무사는 “시가의 80% 이하로 지나치게 낮출 경우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80% 선에 맞추어 감정가를 조정하는 경우도 일부 나타난다”고 전했다.

▽각종 변칙 증여〓비상장주식을 갖고 있을 경우, 과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친구 등 제3자와의 위장거래로 ‘과세 기준’을 낮추는 방법이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시세가 주당 3만원인 비상장주식의 일부를 친구나 제3자에게 주당 1만원에 넘기면 과세 기준이 1만원이 되기 때문에 자식에게 주식을 증여할 때 증여세를 줄일 수 있다.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구입한 뒤 자식에게 넘기는 방법이 있다. 세금을 내느니 금융비용을 부담하겠다는 방식이다. 대출금을 뺀 증여 금액에 대해서는 증여세(최고 세율 50%)가 적용되고 대출금은 이보다 세율이 낮은 양도세율(최고 36%)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자금을 해외로 돌려 편법 증여하는 방식도 선호되고 있다. D이민개발공사 관계자는 “증여세 부담이 적은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지에 주유소나 한의원 등을 차려놓고 한국에서 자금을 끌어온다”며 “2세들이 외국에서 생활할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해 주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부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거액의 종신보험을 배우자나 자식 명의로 들어 상속하는 편법도 많이 쓰였으나 최근 국세청이 종신보험을 통한 상속에도 세금을 물리기로 함에 따라 한풀 꺾였다.

이 밖에 현금이나 귀금속, 골동품이나 고가의 미술품을 통한 상속도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이뤄지고 있다. 이 방법은 세무 당국의 추적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E씨(40)는 “돈이 있는 사람들은 증여세에 대해 빌딩 두 채를 가지고 있을 경우 한 채는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 때문에 아예 부동산을 팔아 현금으로 나눠주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의 이 같은 현상에 대해 100억원대의 자산가인 L씨(63)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최대한 재산을 현금화하는 한편 상속을 서두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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